18일 경기 광주시 오포읍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너비가 13m에 이르는 대형 태극기가 벽에 걸린 건물 입구에 새겨진 ‘창조적 명품’이란 어구가 눈에 들어왔다.
대기업에선 나올 수 없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국가 경제에 기여하자는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주성엔지니어링 대표·사진)의 평소 신념이 담긴 것이다. 그는 평소 임직원들에게 “1등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따라잡으려면 그 회사가 들인 노력의 3배 이상을 쏟아야 한다”며 “하지만 남의 것을 베끼지 않고 새로운 것을 먼저 하면 1배의 노력으로도 1등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황 회장은 올 2월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벤처기업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업계에선 주성엔지니어링의 해외 매출비중이 60% 이상에 이르는 데다 국내 특정 대기업에 거래처가 묶여 있지 않아 대·중소기업 상생문제에서 황 회장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평가한다. 주성엔지니어링은 2002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거래 관계가 끊긴 뒤 매출이 절반가량 급감하는 시련을 겪었지만 앞선 기술력과 품질로 이를 이겨내고 반도체 생산장비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우뚝 섰다.
황 회장은 최근 대·중소기업 상생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묻자 “대기업 위주의 정부 연구개발(R&D)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뤄 신청하는 정부 R&D 자금이 중소기업 스스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목적은 거의 없고, 대기업과의 협력을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된다는 것. 이에 따라 창조적 원천기술을 만들지 못하고 대기업 생산기술의 원가절감 차원에서 정부 자금이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 회장은 “거대한 조직에 둘러싸인 대기업은 양산에는 강하지만 ‘창조적 명품’을 만드는 데는 중소기업보다 오히려 취약하다”고 했다.
그는 16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7대 상생협력 실천방안에 대해 “사급(賜給)제도는 결국 협력업체들이 인건비만 따 먹으라는 얘기”라며 “중소기업이 망하는 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기업이 원자재를 구입해 주면 결국 협력업체들의 비용구조가 공개되고 원가절감을 통해 경영을 합리화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 봉쇄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장비 국산화율이 낮은 것과 관련해서도 “국내 대기업들이 진정 창조적 기업으로 나아가려면 국내 협력업체들을 육성해 외국에서 안 쓰는 새로운 장비를 개발해 사용해야 한다”며 “반도체 장비를 국산화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대기업들이) 제대로 된 R&D를 안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고언(苦言)도 잊지 않았다. 황 회장은 “연구개발은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이라며 “제일 쉬운 것도 똑바로 못하면서 상생만 외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저 모방만 하려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제대로 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중소기업 CEO들이 여건이 판이한 대기업의 성장경로를 흉내 내지 말고 중소기업만의 독창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벤처기업협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중견 벤처 CEO나 전문가들을 멘터로 지정해 창업자들에게 조언해 주는 ‘벤처 7일 장터’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한국에는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롤 모델이 없다”며 “글로벌 중소기업이 나올 수 있는 기업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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