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임차료도 건지지 못한 채 적자를 거듭하는 먹을거리 점포들이 적지 않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경기가 살아나기만을 기다리다 끝내 문을 닫기도 한다. 이럴 때는 과감히 업종 전환을 검토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물론 하루아침에 업종을 바꾸는 것은 금물이다. 미리 현장 체험을 하면서 수익성을 따져보는 것이 필수다. 7년간 운영하던 호프집을 국숫집으로 전환한 정해진 사장(54)의 사례가 모범 답안이다.》 ○ 찜질방 생활로 얻은 귀중한 사전 경험
정 사장은 7년 동안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역 인근에서 49.5m²(약 15평) 규모의 호프집을 운영했다. 지하철역 입구라 입지가 좋아 초기 2, 3년은 수익이 났다. 그러나 주위에 새 호프집이 늘어나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게 됐다. 새로운 업종으로 바꿔보고 싶었지만 또 실패하면 어쩌나 망설이는 사이 시간만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게 됐다. 개그맨 김용만 씨가 주주로 참여한 프랜차이즈 국숫집 ‘닐니리맘보’였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국수전문점에 대한 자료를 챙겨보고, 가맹본사에 찾아가 상담도 해봤다. 그러나 아내가 “3000, 4000원짜리 국수를 팔아서 얼마나 벌겠느냐. 하던 거나 하는 데까지 해보자”며 반대했다. 그러던 중 가맹본사로부터 경기 평택역사의 푸드코트 점포를 운영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3000만 원을 투자하면 3년을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정 사장은 “큰돈이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이 정도 비용이라면 만약 실패하더라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호프집 운영은 아내에게 맡겨 두고 일단 혼자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육수 끓이는 법부터 면 삶는 법까지 본사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익혀 나갔다. 지난해 8월 점포를 열고 두 달간은 일산에서 평택까지 출퇴근을 했다. 출퇴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몸도 피곤했다. 집을 구하자니 돈이 아까워 점포 인근 찜질방에서 잤다. 정 사장은 “서너 달을 찜질방에서 생활하자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개점 두 달 만에 돈이 벌리기 시작해 힘이 났다”면서 “하루 평균 매출이 80만∼90만 원씩 되고 주말에는 100만 원을 넘기도 했다”고 전했다. 매출이 호프집의 서너 배에 이르자 아내도 업종 전환에 찬성했다. 평택 점포는 같이 일하던 주방 아주머니가 당장 인수하겠다고 나서 3년 계약분의 나머지에 해당하는 2000여만 원에 넘겼다.
고된 찜질방 생활을 청산하고 일산으로 돌아온 정 사장은 3월 호프집 간판을 내리고 ‘김용만의 국숫집 닐니리맘보’ 간판을 내걸었다. 전환 비용은 주방 시설과 인테리어 등을 모두 합쳐 5000만 원 정도. 새로 점포를 열기에는 어림없는 액수지만 업종 전환에는 충분했다.
○ 사전 경험 토대로 새 업종 매뉴얼 완성
정 사장은 평택점의 사전 경험을 토대로 새 점포의 운영 매뉴얼을 하나씩 만들어 갔다. 우선 영업시간을 새벽 2시까지로 정했다. 서울에서 지하철 막차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이 많은 데다 주변 사무실에 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인이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평택점은 푸드코트가 끝나는 오후 9시 문을 닫아야 해서 밤손님을 놓치는 것이 아쉬웠던 터였다. 전략이 적중하면서 오후 10시∼새벽 2시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한다. 포장 손님도 많아 따로 포장용기를 만들고, 점포 밖에는 ‘모든 메뉴 포장됩니다’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젊은 손님이 많은 것을 감안해 저가 정책을 고수했다. 오픈 초기에 재료비 등 원가 상승 요인이 있었지만 셀프주먹밥만 25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렸다. 평택점에서 젊은층이 가격에 민감하다는 걸 터득한 덕분이다. 초기 홍보에 주력한 점도 주효했다. 평택점 당시 김용만 씨 팬 사인회 효과를 톡톡히 봤던 터라 오픈 직후 본사에 팬 사인회를 요청했다. ○ 시행착오도 겪어
업종 전환 과정이 모두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의욕이 너무 앞서다 보니 직원을 4명(주방 3명, 홀 1명)이나 월급제로 고용했던 것. 인건비만 월 600만∼700만 원이 나갔다. 이에 홀 업무는 정 사장과 아내가 책임지기로 했고, 주방도 2명으로 줄였다. 손님이 가장 많은 점심에만 3시간짜리 시간제 직원을 썼다. 인건비가 반으로 줄었다.
주방에서 국수를 만들어 손님상에 나가는 시간은 불과 4분.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한 사람은 국수를 삶고 옆에서는 고명 등을 얹고 육수를 부어 완성한다. 홀에서는 반찬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다가 국수가 나오면 바로 상에 낸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는 시간까지는 보통 10∼15분. 점심에는 한 테이블에 최대 6번까지 손님이 든다.
그 덕분에 점포가 크지 않아도 매출이 매우 높은 편이다. 하루 평균 130만∼14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월 매출은 평균 4000만 원 선. 임차료, 인건비, 재료비 등을 제하고 나면 평균 1000만∼1200만 원이 순이익으로 남는다.
정 사장은 “안 되는 점포를 끌어안고 고민만 하던 때를 생각하면 요즘은 정말 장사할 맛이 난다”며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나름대로 검증해 보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전문가 조언 업종전환 고심? 부닥쳐 보면 길이 보입니다
정해진 사장의 지난 1년은 창업 시장에 진입하려는 신규 창업자는 물론 점포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는 기존 자영업자들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좋은 귀감이 될 만하다. 바로 ‘업종 전환’과 ‘사전 체험’이다. 정 사장은 업종 전환을 통해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모색하면서 동시에 사전 체험이라는 준비 과정을 거침으로써 만년 적자 점포 사장에서 소위 ‘대박 점포 사장님’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수익이 낮은 점포를 운영하는 창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 아니라 적극적인 점포 회생 전략이다. 그중 하나가 업종 전환이다. 무작정 사정이 나아지거나 경기가 살아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과감히 업종을 바꾸는 것이 좋다.
업종을 전환할 때는 사전 체험이 중요하다. 최근 우리나라 자영업자 10명 중 1명은 창업한 지 3년 안에 폐업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를 거쳐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경험이다. 정 사장처럼 관련 업종 점포에서 직접 실무를 겪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여건이 안 된다면 직원으로,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라도 일을 해보는 것이 좋다. 직접 부닥쳐 봄으로써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 경험은 창업 후 실제로 매장을 운영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런 점에서 정 사장의 창업 과정은 훌륭한 롤 모델이 될 만하다.
한 가지 조언을 덧붙인다면 현재 상태에 안주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매출을 확대할 방안을 모색하기 바란다. 아침 손님을 잡아 매출 증대를 꾀하는 것도 좋다. 새벽 2시까지인 현재 밤 영업시간을 한 시간 정도 줄이는 대신 아침에 한 시간 일찍 문을 열면 남들보다 한두 시간 서둘러 출근하는 손님을 잡을 수 있다.
주변에 사무실이 많은 데다 점포가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만큼 출근하는 직장인 수요는 충분하다. 게다가 현재 파는 잔치국수나 물만두는 아침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또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추가 비용이나 인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단 아침 장사를 한다고 이것저것 메뉴를 늘리는 것은 좋지 않다. 국숫집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빠른 조리 시간. 메뉴 구성이 단순해야 음식을 빨리 내놓을 수 있다. 손님들도 메뉴 선택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된다. 아침 장사를 하면서도 ‘손님들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식사를 제공한다’는 원칙은 지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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