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의 손에는 여성 화장품 브랜드 ‘이자녹스’ 제품이, 여자의 손에는 웬만한 아령 무게인 4kg짜리 세탁세제 ‘테크’가 들려 있었다. 다소 어색한 이 장면이 두 사람에게는 이미 일상이 됐다. LG생활건강 화장품사업부의 이구성 씨(27)는 부드럽고 온화하면서 약간 수줍어했고, 생활용품사업부의 이지혜 씨(23·여)는 적극적이고 과감했으며 때론 도발적인 모습도 보였다. 두 사람은 LG생활건강의 마케팅 전문 인턴 과정을 거쳐 지난해 10월 정식 채용된 신입사원이다.》 ○ 팔방미인형 인재
LG생활건강 인사 담당 임지영 대리는 “이구성 씨는 안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가진 팔방미인형 인재”라고 설명했다. 마케터로서는 최상의 조건이라는 것.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씨는 재학 중 친구들과 15분짜리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라고 했지만 짧은 영화를 만들며 인간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웠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여기저기 영화제를 찾아다니며 자원봉사 활동을 많이 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1년간의 어학연수 기간에는 에이즈 예방 관련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도 했다. 다시 학교에 돌아와서는 방송국 PD가 되고 싶은 생각에 스터디 그룹에 합류해 토론과 글쓰기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러다 찾은 길이 마케팅 분야다.
○ 나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어라
이지혜 씨의 ‘최대 무기’는 적극성이다. 이화여대에서 영문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한 이씨는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제너럴일렉트릭(GE) 인턴에 3학년 때 합격해 6개월을 근무했다. 그는 “그냥 운이 좋았다”며 “왜 뽑혔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씨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GE가 왜 그를 뽑았는지 짐작이 됐다. 그는 밝고 긍정적인 대화법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 씨는 “학점은 4.3 만점에 3.98로 나쁘지 않았고, 영어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며 “다들 비슷비슷한 조건이라면 결국 개인의 성격과 태도에서 합격 여부가 결정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GE에서의 6개월 인턴 경험을 통해 그는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킹 방법과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원래 생기발랄한 성격이지만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사귀려고 노력했다. 이 씨가 인턴을 마칠 때 이례적으로 GE 핵심 간부가 환송회를 열어준 사실만으로도 그의 ‘친화력’은 증명됐다.
○ “마케터라면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야”
두 사람은 인턴에 합격하기 위해 별도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인턴 합격을 위해 스터디 그룹을 짜고 해당 회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대학생이 많은 현실에서 의외였다. 이구성 씨는 “다른 직종은 잘 모르겠지만 마케팅 분야라면, 그리고 다른 회사는 잘 모르겠지만 LG생활건강이라면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생각, 기존 질서를 흔드는 생각들이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학점은 4.5 만점에 3.5 수준으로 낮은 편인 그가 인턴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사고였다.
인턴 선발을 위한 면접에서 첫 번째 문제는 ‘10년 뒤 주방세제가 어떤 형태로 발전할 수 있을까’였다. 이어 치러진 감성 면접에서는 하늘, 구름, 도시, 열정, 지붕 등 여러 단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뒤 잡지, 색종이, 물감, 신문 등 주어진 도구로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이 씨는 “주5일제가 정착되면서 여행, 캠핑 등이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에 티슈처럼 뽑아 쓰는 주방세제가 나올 것 같다”고 말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 평가에서는 단어 가운데 ‘열정’을 선택했다. 이 씨는 ‘열정적으로 일하겠다’는 식의 평범한 내용은 평가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동물의 열정’이라는 ‘4차원적’인 이야기를 구성했다. 톡톡 튀는 이 씨의 이야기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 인턴 과정 중에서도 두각
이 씨는 인턴 기간 중 생활용품사업부 전 사원이 참여한 ‘네이밍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했다. LG생활건강이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때 붙일 수 있는 이름을 공모한 것이었는데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 이 씨는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기웃대다 보니 좋은 결과도 하나둘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구성 씨는 인턴 기간 중에도 화장품 브랜드인 ‘수려한’과 ‘이자녹스’를 담당했다. 이 씨는 이때 수려한의 광고 문구를 새로 제출했는데 최종 선택되지는 않았지만 선배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인사담당자가 말하는 인턴십]
○ 좋은 예
열정적이며 아이디어가 넘치는 인재
2007년 ‘숨:37’이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당시 인턴 자격으로 TF에서 근무하던 전모 씨의 경우 ‘숨’의 주력 제품이 될 에센스의 네이밍 회의에서 방대한 사전 자료 조사 및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에센스의 이름을 제안했다. 전 씨는 이후 정식사원으로 입사했고, 지금도 회사에서 신뢰받는 ‘숨’의 마케터로 근무하고 있다.
○ 나쁜 예
경험만 쌓기 위해 오는 인턴들
채용 준비를 위해 경험만 쌓으러 오는 인턴들이 많아져 짧은 기간에 성실하지 못한 자세로 임하는 경우가 있다. 각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네트워크는 좁으면서도 긴밀하기 때문에 타사 채용에 지원했을 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모른다. 채용과 직접 연계되지 않는 인턴십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약삭빠른 여우’보다는 ‘근면한 곰’이 낫다. 최근 인턴십이 새로운 채용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미 많은 정보를 가진, ‘준비된 인턴들’이 많다. 하지만 지나친 아부나 애교로 일관하는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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