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투자에 소극적이다. 상반기에 사상 최대 이익이 났는데도 투자를 하지 않아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될 것 같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사정은 이웃 일본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기업들의 현금 보유액은 3월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7.3%로 2004년 10%를 나타낸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도 기업들이 6월 말 현재 1조8000억 달러 즉 GDP의 12% 정도의 현금을 고스란히 금고에 넣어두고 있다. 요즘 상한가를 치고 있는 애플은 400억 달러의 잉여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주주들이 투자하지 않을 거면 배당을 하라고 아우성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고용창출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들이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업들이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투자에 대한 확신도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금융위기 이후 생긴 리스크에 대한 ‘과잉 회피성향’ 때문이다. 개인투자자와 마찬가지로 기업들도 금융위기 때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불과 서너 달 사이 세계 총수요의 30%가 감소하고 은행 대출이 올 스톱되는 ‘공황’을 경험한 기업들로서는 웬만한 경기회복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어렵다. 더구나 더블딥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신중 모드’로 갈 수밖에 없다. 이는 나라 살림에서도 나타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권하는 적정 외환보유액은 그 나라의 3개월 수입물량 대금 정도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에 적정 외환보유액보다 2배나 많은 2300억 달러를 보유했음에도 홍역을 치렀다. 최근에도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음에도 사소한 외부 변수에 환율이 요동쳤다. 적정 보유액의 개념이 무색한 셈이다.
그러나 현금이 많으면 단기적으로 든든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담이 된다. 낮은 이자율로 인한 금전적 손해도 있지만 적절한 투자를 적기에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이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똑같다. 그래서 기업들도 호황 끝 무렵에 ‘뒤늦은 확신’을 가지고 허겁지겁 투자하기 시작하고 개인들도 상투에 뛰어든다.
기업의 현금 풍년은 증시에 결코 나쁘지 않다. 투자할 곳을 못 찾아 부채를 상환하면 순자산가치(PBR)가 늘어나 주주가치가 증대할 것이고, 부채가 없다면 결국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형태로 주주들에게 환원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아니면 다른 유망 업종의 기업을 인수해 사업을 확장할 개연성이 높아 군침 도는 인수합병(M&A) 시장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최근 주가가 1,700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환경을 배경으로 한다. 주식투자의 위험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는 것. 그럼에도 현재 다수의 투자가는 리스크를 과대평가하고 있다. 리스크가 과대평가될 때가 투자의 적기임은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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