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쌍용 예가 클래식’ 아파트. 30년 된 옛 평화아파트를 리모델링해 새롭게 태어난 이 아파트에서 과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외형은 물론이고 주변 조경, 실내 디자인까지 싹 바뀌었다. 아파트를 헐지 않고도 지하주차장이 없던 12층 아파트에서 지하 2층 주차장을 갖춘 13층 아파트가 됐다. 집 크기는 각각 14∼26m²(약 4∼7평)씩 늘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길어져 재건축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아파트 리모델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내부 마감재만 바꾸던 수준이던 기술력이 신축 못잖게 발전한 것이 한몫했다. 이에 따라 오래된 수도권 아파트들이 잇달아 리모델링 추진에 나서고 있다.
○ 기술력 진화, 리모델링 다시 본다
평화아파트 리모델링 이후 주차공간은 기존의 58대에서 285대로 늘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전용 엘리베이터에다 자연 채광 시설도 설치했다. 기존의 지상 주차장 공간은 잔디 쉼터, 모험놀이터, 수경 공간 등으로 바뀌었다. 각 동 1층을 필로티(아파트 1층부에 가구를 배치하지 않고 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쳐 개방감을 높인 구조)로 띄운 공간과 지하 1층에는 로비 라운지, 가구별 라커 등 주민편의시설이 들어섰다.
리모델링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안전성도 보완했다. 콘크리트 기둥에 특수철판으로 보강해 안전성을 높이면서도 위로 한 개 층을 수직 증축(층수를 올려 짓는 것)했다. 벽체에는 댐퍼(진동 흡수장치)를 매립해 리히터 규모 6.5∼7의 지진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하고도 공사 기간은 24개월로 여타 재건축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빨랐다.
건설업계에서는 국내 업체의 리모델링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평한다. 증축 부분의 하중을 분산시키거나 기존 건물의 강도를 보강하는 등 다양한 기술이 개발돼 수직 증축, 지하주차장 시공 등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양영규 쌍용건설 리모델링사업부장은 “3, 4개 층 정도 수직 증축만 허용된다면 2베이 평면을 3베이로 만드는 등 최신 아파트와 차이가 없는 리모델링 아파트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모델링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노후 단지의 리모델링 사업도 속도가 붙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입주가 시작된 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 등 1기 신도시에서만 30여 개 단지, 3만5000여 가구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 정책적 지원 필요
하지만 여전히 리모델링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안전성을 이유로 수직 증축이 허용되지 않아 가구 수가 증가하지 않는다.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변경할 때에만 예외적으로 1개 층의 수직 증축이 허용된다. 가구 수가 늘지 않아 일반분양을 받을 수 없어 주민들이 모든 공사비를 부담해야 한다. 전체 조합원 80%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국토해양부는 다음 달 3일 공청회를 열어 리모델링 관련 주택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가구 수 10% 증가 허용 △수직 증축 허용 △전용 85m² 이하 60%까지 증축 허용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대로 법이 개정되면 리모델링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토부는 안전성 문제를 들어 ‘가구 수 10% 증가’와 ‘수직 증축’을 허용하는 데는 다소 부정적인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박사는 “서유럽에서는 리모델링이 전체 건설시장의 50%를 상회할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며 “건축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조경을 재활용하는 등 저탄소 녹색성장과 가장 부합하는 리모델링이 자리 잡기 위해 정부의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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