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분이 있는 해외교포 고객이 지난해 중반쯤 달러를 원화로 환전해 한국 주식시장에 적립식으로 투자할 의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투자 목적을 먼저 물어보니 단기 차익을 실현할 의향은 없으며 장기적으로 투자해 고국에서 여생을 보낼 노후생활 자금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코스피는 1,400 선으로 밸류에이션도 매력적인 상황이었기에 장기 적립식 투자는 ‘당장’ 시작해도 괜찮다고 답변을 드렸다. 그리고 올해 초 고객을 다시 만나게 되어 투자 성과를 물어봤다. 당연히 수익을 내며 투자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분 좋은 대답이 들려올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안타깝게도 그 당시에 투자를 시작하지 못했다며 속상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환율이었다. 그 당시 2009년 2월까지만 해도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달러당 1550원을 돌파했던 원-달러 환율이 그해 여름에 1200원까지 급락했다. 사실 외환위기 등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 외국으로 이주한 해외 교포의 경우 국내 투자 여건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고객도 그런 관점에서 작은 흔들림에도 원-달러 환율이 다시 크게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환전을 미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이후로 원-달러 환율은 1250원 선까지 잠시 오르나 싶다가 1100원대로 내려왔고, 코스피는 1,800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산관리 관점에서 볼 때 이 고객은 치명적인 실수를 두 가지나 하고 있다. 첫 번째는 단기적인 투기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투자계획과 목적을 잊었다는 점이다. 단기적인 환율 전망은 누구도 알 수 없는 투기의 영역인데 이것에 연연한 나머지 매우 소중한 재무목표 중 하나인 노후생활에 대한 착실한 준비를 연기해 버렸다. 두 번째는 다른 개인 투자자들도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자신의 예상한 방향으로 자산 가격이 움직여 주지 않을 경우 아예 대응을 포기하고 ‘기다리면 어떻게 잘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급하게 주식을 판 다음에 예상과 달리 주가가 상승할 경우 마냥 가격이 다시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거나, 반대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전혀 대응하지 않고 자신의 소원대로 주가가 폭등해 줄 때만을 기다리는 무(無)대책의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환전을 해야만 하는가?’라고 묻는 그 고객에게 필자는 환율 전망에 더는 연연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금리도 낮고 뚜렷하게 좋아질 만한 근거도 많지 않은 달러화 예금자산이라면 하루빨리 전망이 더 좋은 자산들로 분산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고국에서 보내는 행복한 노후생활’이라는 소중한 재무목표를 감안한다면 단기적인 원-달러 환율의 고점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 전망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한 번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절호의 투자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그 고객에게 필자는 대답했다. ‘투자에서 누구나 기다리는 그때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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