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수신불량 ‘나몰라라’ KT…잡스 ‘남탓’회견과 닮은꼴 해명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29일 03시 00분


“아이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폰의 안테나 문제를 지적하는 소비자는 아주 적은 비율에 불과합니다.” “애플이 미국 기업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라면 좋겠습니까.”

혹시 이 말들이 기억나시는지요. 7월 16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열렸던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기자회견 내용입니다. 이른바 ‘안테나게이트’라고 불린 애플의 아이폰4를 잘못 쥘 때 수신감도가 떨어지던 문제에 대한 해명 회견이었죠. 그렇다면 이런 말들은 어떤가요.

“아이폰4만 통화가 도중에 끊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이폰4의 통화 불량률은 아주 낮은 수준입니다.” “이건 경쟁업체의 네거티브 마케팅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아이폰4의 수신불량 문제를 다룬 ‘통화 중 ‘뚝’…아이폰4 미스터리’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KT 홍보실로부터 들었던 답변들입니다. 마치 잡스 CEO의 ‘안테나게이트’ 기자회견 재방송이라도 보는 느낌이었죠.

▶본보 28일자 A5면 참조
통화중 ‘뚝’… 아이폰4 미스터리?


미국 언론들은 잡스 CEO가 아이폰4 관련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가 아이폰4를 개선하겠다는 얘기를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잡스 CEO가 보여준 건 경쟁사 제품도 특정 부위를 손으로 잡으면 수신 감도가 떨어진다는 ‘남 탓’뿐이었죠. 경쟁사 제품의 문제를 알게 된다고 아이폰4의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기자회견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분명히 존재하는 소비자 불만을 ‘낮은 수준’이라고 치부한 탓에 애플은 순식간에 해당 소비자들의 반감을 사야 했습니다. 또 세계 각국에서 물건을 파는 글로벌 기업의 CEO가 ‘한국 기업’ 운운하며 미국인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모습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폰4 수신불량 문제에 대한 KT의 해명은 놀랄 만큼 애플과 닮아 있었습니다. 다른 제품에서 수신불량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다고 아이폰4의 수신불량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고, 들끓는 소비자 불만을 ‘낮은 수준’이라고 말해버리면 불난 데 부채질하는 꼴이 되는 걸 알면서도 KT는 ‘별 문제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아마도 아이폰4의 통신모듈이 아이폰3GS와 달라진 게 문제이지 않겠느냐는 지적을 했을 때 KT 관계자는 “애플은 아이폰에 사용된 부품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답을 하더군요. 통신망 연동 작업을 하려면 KT도 이를 파악했을 텐데 소비자에게 문제 원인을 밝히는 것보다 애플의 비공개 원칙을 지켜주는 게 더 중요했던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국내 아이폰 사용자는 100만 명이 넘습니다. 저도 아이폰을 씁니다. 이런 아이폰을 쓰려면 누구나 최소한 한 번은 거치는 과정이 있습니다. 바로 컴퓨터와의 ‘동기화’입니다. 컴퓨터의 정보와 아이폰의 정보를 똑같이 유지하는 작업이죠. KT는 지금 애플과 동기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KT가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진정 동기화하려 들어야 할 대상은 애플이 아니라 KT의 가입자들 아닐까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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