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서 김장용 배추를 재배하는 농민 장웅기 씨(50)는 배추밭 군데군데 잎이 누렇게 뜬 배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금 작황이라면 올해는 상품가치가 있는 배추는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종기의 잦은 비바람으로 파종 자체가 늦어진 데다 생육도 더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출하된 강원 고랭지배추 가격 폭등에 이어 겨울에 출하되는 호남지역의 김장용 배추 가격도 벌써부터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30일 정부는 배추 가격 안정을 위해 중국산 배추 150여 t을 긴급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산지 농민과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배추값 고공행진
배추값은 연일 고공행진이다. 추석 직후인 지난달 27일 한 포기에 1만3800원(농협하나로마트 거래 기준)까지 올랐던 배추 소매가격은 29일 8800원으로 잠시 주춤하더니 30일 다시 9900원까지 올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상, 풀무원 등 김치업체들도 다음 주 포장김치 가격을 최고 26.4%까지 올리기로 했다. 대상이 30일 대형마트에 통보한 가격에 따르면 ‘종가집 포기김치 4.2kg’은 현재 2만3900원에서 2만6500원으로 10.9% 오르고 2.3kg들이 포장김치는 1만4950원에서 1만8900원으로 26.4%까지 오른다.
급등한 배추값에 놀란 소비자들은 10월 말 이후 시장에 나오는 김장배추 가격도 폭등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현재의 산지 작황을 볼 때 김장배추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농민과 유통업계의 전망이다. 본격적인 수확기에는 지금보다 약간 떨어질 수도 있지만 예년보다는 훨씬 높은 가격에 팔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 여름장마에 모종 망쳐 한숨… 가을가뭄에 작황 나빠 시름 ▼
장웅기 씨는 “8, 9월 배추 모종을 옮겨심기 전에 기계로 미리 밭을 갈아줘야 하는데 올해는 비 때문에 이 작업이 차질을 빚었다”며 “파종 이후에도 수시로 밭이 물에 잠긴 탓에 생육이 더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밭 가장자리에 있는 배추의 잎 크기는 밭 가운데 배추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하우스 배추도 피해를 봤다.
이웃 농민 윤홍택 씨(50)는 “지금은 오히려 가뭄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이 시기에 내리는 비는 배추 생장에 좋은 비”라며 “추석 때 서울은 물난리가 났는데도 이곳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추밭에 인접한 무밭도 이가 빠진 것처럼 무청이 보이지 않는 이랑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 소비자, 농민, 상인, 정부 모두 ‘울상’
배추값이 폭등했지만 농민들이 얻는 이익은 그리 크지 않다. 강원지역의 고랭지 배추는 9월 말 수확이 마무리됐다. 이 배추들은 90% 이상이 포전매매(밭떼기)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농민들은 배추값 폭등의 영향을 작게 받았다는 설명이다. 7∼9월에 수확한 고랭지배추는 5∼7월에 파종했다. 포전매매는 재배 초기나 작황을 가늠할 수 있는 재배 중간에 이뤄지냐에 따라 계약 금액에 차이가 있다.
올해는 대관령지역 고랭지배추 재배 농가가 시련을 겪은 해였다. 건조한 봄철에 배추를 어렵게 심었지만 여름철 폭염을 견디지 못한 배추들이 상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잦은 비로 살아남은 배추의 품질도 떨어졌다.
고랭지배추의 포전매매 가격은 보통 3.3m²(1평)당 6000∼1만 원이다. 그러나 작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최고 3.3m²당 3만 원까지 올랐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작황이 좋지 않아 출하량도 3.3m²당 6∼13포기로 들쭉날쭉하다. 산지가격도 포기당 460원에서 5000원까지로 편차가 큰 셈이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의 한 경매사는 “올해 배추는 품질도 좋지 않아 거래 가격 편차가 심해 가격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서 고랭지배추 농사를 짓는 최용집 씨(52)는 “작황 부진을 고려해 계약금액을 많이 받은 농민이나 재배 초기에 계약한 중간상인은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도 있겠지만 포전매매는 작황이나 가격 폭등의 영향은 작은 편”이라고 말했다. 좀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포전매매를 미룬 농민들은 폭염과 장마로 손해를 본 경우가 많다. 중간상인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농촌경제연구원 유상모 연구원은 “올해는 작황이 워낙 좋지 않아 포전매매로 값을 미리 치른 상인들도 큰 이익을 남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김장배추 가격이 지난해보다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10월 중순 이후까지 쉽게 가격이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동현 이마트 채소 바이어는 “올해는 김장배추 출하가 보름쯤 늦어질 것으로 보여 가정에서는 김장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이 그나마 김장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는 중간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계약을 통해 배추 매입가격을 20∼50% 낮추겠다고 나섰지만 배추값이 안정을 찾지 못해 농민과 대형마트 모두 가격 협상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년에 네 번(봄 여름 가을 겨울) 재배하는 배추 작황이 올해처럼 안 좋은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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