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가족의 식탁에 오르는 김치가 배추김치에서 양배추 김치로 바뀌었다.
30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최근 주방장을 불러 “날씨 때문에 배추 값이 올랐으니 당분간 배추 대신 양배추로 만든 김치를 달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 한 관계자는 이날 “29일 아침식사부터 김치가 바뀐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을 위한 구내식당에까지 양배추 김치를 일률적으로 강제하지는 말라”는 당부도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이색 지시’는 부인 김윤옥 여사가 최근 시장에 들렀다가 말로만 듣던 ‘배추 1포기=1만 원’ 현상을 보고 이를 이 대통령에게 전한 게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대통령 가족의 양배추 김치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인터넷 언론과 누리꾼들은 “양배추 1포기 가격은 배추보다 10∼20% 정도밖에 저렴하지 않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 홍보라인 관계자는 “인터넷상의 배추-양배추 가격 논쟁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본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며 “중요한 것은 이 대통령이 심정적으로라도 배추김치를 못 먹는 서민들의 마음을 함께하고자 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배추 부족 현상이 심각하니 나부터라도 입을 줄이겠다’는 심정의 발로라는 것이다.
MBC라디오 시청자가 전화하는거 들었습니다 자기 친정에 배추 농사하는데 지금 한포기에 1,700몇십원 받았다고요....그돈 다 어디 갔을까요?....가락동 중개인이나 대형마트들이 다 먹었나?....농산물 유통 확 바꿔야하지 않겠어요?
2010-10-01 13:17:07
위대한 수령 께서 양배추 말하니까 댓글 다는 꼴보니까 영락없는 북조선 인민일보..양배추먹고 방구끼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겄다. 인간들..ㅋㅋ조디를 공업용미싱으로 꿰메는게 낫겄다.
2010-10-01 08:17:20
1950년대 후반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동네 큰 애들과 뚝섬유원지에 미역을 감으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양배추 서리를 한 적이 있다. 양배추를 뿌리채 뽑아 런닝구 속에 감춘채 한참 도망을 쳤다. 성동교를 건너자마자 한양대 쪽의 대로변에는 국수와 냉차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뿌리가 달린 그 양배추를 한 아주머니에게 내밀면 그 아주머니는 국수 한 그릇을 시원한 냉국물에 말아 주셨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서로 양배추를 달라고 하셨다. 국수 한 그릇에 20환인데 10환어치만 먹으면 초등학생은 배가 불렀다. 호떡 한 개 값은 1환, 전차표 값은 10환에 4장이었다. 그 시절 양배추 생산은 8~9월이 피크였고, 얼갈이배추는 한여름에 전무했기에 누구나 양배추김치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MBC라디오 시청자가 전화하는거 들었습니다 자기 친정에 배추 농사하는데 지금 한포기에 1,700몇십원 받았다고요....그돈 다 어디 갔을까요?....가락동 중개인이나 대형마트들이 다 먹었나?....농산물 유통 확 바꿔야하지 않겠어요?
2010-10-01 13:17:07
위대한 수령 께서 양배추 말하니까 댓글 다는 꼴보니까 영락없는 북조선 인민일보..양배추먹고 방구끼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겄다. 인간들..ㅋㅋ조디를 공업용미싱으로 꿰메는게 낫겄다.
2010-10-01 08:17:20
1950년대 후반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동네 큰 애들과 뚝섬유원지에 미역을 감으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양배추 서리를 한 적이 있다. 양배추를 뿌리채 뽑아 런닝구 속에 감춘채 한참 도망을 쳤다. 성동교를 건너자마자 한양대 쪽의 대로변에는 국수와 냉차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뿌리가 달린 그 양배추를 한 아주머니에게 내밀면 그 아주머니는 국수 한 그릇을 시원한 냉국물에 말아 주셨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서로 양배추를 달라고 하셨다. 국수 한 그릇에 20환인데 10환어치만 먹으면 초등학생은 배가 불렀다. 호떡 한 개 값은 1환, 전차표 값은 10환에 4장이었다. 그 시절 양배추 생산은 8~9월이 피크였고, 얼갈이배추는 한여름에 전무했기에 누구나 양배추김치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2010-10-01 07:16:28
추억의 양배추김치! 1950년대와 60년대, 강원도의 고냉지배추가 생산되어 서울로 출하되기 이전 시절! 뚝섬 화양리 구의 답십리 등지의 비닐하우스 시설이 아닌 노지에서 생산된 얼갈이배추가 모두 소비되고나면 8월 한여름 한달간은 양배추김치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양배추김치만이 아니라 도마도김치 참외김치도 없어서 못 먹을 판국이었다. 양배추김치는 얼갈이배추김치조다 좀 떨어지지만 그 나름대로의 특유의 맛과 향기가 있다. 1960년대 중반에 전기통닭이 유행하자마자 연이어 튀김통닭이 유행하면서 통닭과 양배추채는 뗄래야 뗄수조차 없는 관계가 됐다. 그 시절 양배추는 가장 값싼 채소 중의 하나였다. 대통령 이명박은 그 시절 지겹기까지 했던 양배추김치에 대한 추억이 상기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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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1 15:47:31
MBC라디오 시청자가 전화하는거 들었습니다 자기 친정에 배추 농사하는데 지금 한포기에 1,700몇십원 받았다고요....그돈 다 어디 갔을까요?....가락동 중개인이나 대형마트들이 다 먹었나?....농산물 유통 확 바꿔야하지 않겠어요?
2010-10-01 13:17:07
위대한 수령 께서 양배추 말하니까 댓글 다는 꼴보니까 영락없는 북조선 인민일보..양배추먹고 방구끼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겄다. 인간들..ㅋㅋ조디를 공업용미싱으로 꿰메는게 낫겄다.
2010-10-01 08:17:20
1950년대 후반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동네 큰 애들과 뚝섬유원지에 미역을 감으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양배추 서리를 한 적이 있다. 양배추를 뿌리채 뽑아 런닝구 속에 감춘채 한참 도망을 쳤다. 성동교를 건너자마자 한양대 쪽의 대로변에는 국수와 냉차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뿌리가 달린 그 양배추를 한 아주머니에게 내밀면 그 아주머니는 국수 한 그릇을 시원한 냉국물에 말아 주셨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서로 양배추를 달라고 하셨다. 국수 한 그릇에 20환인데 10환어치만 먹으면 초등학생은 배가 불렀다. 호떡 한 개 값은 1환, 전차표 값은 10환에 4장이었다. 그 시절 양배추 생산은 8~9월이 피크였고, 얼갈이배추는 한여름에 전무했기에 누구나 양배추김치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