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상생경영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급(賜給)’제가 협력업체들의 외면으로 난관에 부닥쳤다. 단순 임가공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과 경영간섭 가능성을 들어 협력업체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삼성전자가 개최한 ‘협력사 동반성장 대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삼성은 각 협력업체가 사급 혹은 기존 도급(都給)제 유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8월 삼성이 사급제 시행을 포함한 ‘상생협력 7대 실천방안’을 내놓자 1차 협력업체 모임인 협성회가 사급제 의무화에 따른 애로사항을 삼성 측에 전달해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삼성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협력사들의 자금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철판과 레진, 동의 3대 원자재를 직접 구매해 협력업체들에 제공하는 사급제를 도입하겠다고 올 8월 발표했다. 이에 기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1차 협력사들은 사급제가 원가경쟁력을 무력화해 결국 자신들을 단순 임가공 업체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소기업 전문가들도 사급제가 계약조건 등 기업들이 처한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전인우 연구위원은 “협력업체마다 자신의 업황에 따라 원하는 원재료의 품질이나 종류 등이 모두 다를 수 있다”며 “사급제는 그런 개별기업의 취향을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임가공 우려와 함께 사급제는 삼성이 원자재를 대신 사주기 때문에 장부상 협력업체들의 매출액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기업의 위상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에 1차 협력사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며 “이런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했고 삼성도 이를 감안해 이번에 업체 자율에 맡기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사급제 혜택이 상대적으로 커 이를 환영할 것으로 당초 예상됐던 2, 3차 협력사들도 기존 도급제를 더 선호한다는 것. 삼성전자 2차 협력사 관계자는 “사급제를 수용하면 원가산정을 구실로 삼성 측의 경영 간섭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며 “삼성이 토론회에서 약속한대로 기존 도급제를 택해도 납품단가를 현실화해 준다면 굳이 사급제를 택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거나 환율 악재가 불거질 때 신속히 납품단가를 인상해주면 굳이 사급제를 택해 경영 간섭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결국 삼성이 의욕적으로 상생협력 대책으로 추진한 사급제가 정작 협력사들의 반발과 외면 속에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2, 3차 협력업체들은 사급제보다 거래관계의 문턱을 낮추는 게 더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2차 협력업체 대표는 “삼성 측이 연 5억 원 이상 거래하면 1차 협력사가 아니어도 삼성의 거래업체로 등록해 줄 것을 약속했다”며 “종잡을 수 없는 원자재 가격 문제보다 안정적인 수요 확보가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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