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서 600권 주문한 ‘창업국가’ 공동저자 사울 싱어 e메일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9일 03시 00분


“이스라엘은 국가 자체가 벤처… 모험문화가 强國만들어”

‘창업국가’의 공동 저자인 칼럼니스트 사울 싱어 씨.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등에서 자문역
을 해온 싱어 씨는 1994년 이스라엘로 이주해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다. 사진 제공 사울 싱어
‘창업국가’의 공동 저자인 칼럼니스트 사울 싱어 씨.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등에서 자문역 을 해온 싱어 씨는 1994년 이스라엘로 이주해 예루살렘에서 살고 있다. 사진 제공 사울 싱어
《 세계에서 약 30개 나라가 18개월 이상의 의무 군복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제력 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들어가는 곳은 한국과 이스라엘, 싱가포르다. 이 세 나라는 모두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경제 성장의 모델은 다르다. 한국 경제가 대기업 중심의 성장 모델이라면 이스라엘은 벤처기업 중심의 ‘창업’이 중심이다. 8월 국내에서 출간된 ‘창업국가(Start-Up Nation)’에 따르면 이스라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군대 문화로부터 나온다. 규율과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군대 문화는 통상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각광 받는 창의성이나 혁신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
‘창업국가’는 중동 관련 칼럼을 쓰는 사울 싱어 씨와 중동 전문가이자 벤처 투자 펀드를 운영하는 댄 세노르 씨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등 모두 111명의 인사를 직접 인터뷰하거나 언론을 통해 밝혀진 이스라엘 경제 성장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 구성했다. 책의 저자 중 칼럼니스트인 싱어 씨와 지난달 30일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싱어 씨는 이스라엘 신문인 ‘예루살렘 포스트’의 사설을 담당했으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기고를 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은 이스라엘과 달리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부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이스라엘에서는 1990년대 중반 정부와 벤처 캐피털 펀드의 합작으로 하이테크 산업이 뜰 수 있었다. 정부의 주도로 만든 요즈마 펀드는 창업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줬다. 즉 벤처 창업의 종잣돈을 대는 한편 많은 기업가들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이끈 셈이다. 이때 이스라엘에는 많은 돈이 투자됐고 벤처에 투자한 자금은 충분한 수익을 냈다. 이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자 정부는 할 일이 없어졌다. 한국 정부도 충분히 이러한 촉매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벤처 투자 자금은 정부가 아닌 민간 부문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야 건전한 중소기업을 위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

―한국에서 벤처 창업의 문제점 중 하나는 한번 실패하면 돌이킬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이스라엘의 벤처 기업들은 실패 비율이 낮은가. 아니라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었나.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는 벤처나 중소기업이 성공하는 데 절대적인 요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창업을 하겠는가. 이스라엘에서는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창업자들이 실패의 경험에서 배운다. 이는 문화적인 부문이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도 바뀔 수 있다. 가장 성공한 기업인들의 실패 경험을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누구도 실패한 경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남자들도 모두 군대를 간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군대의 경험을 이스라엘처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군대는 가장 똑똑한 학생들을 받아서 이스라엘이 처한 지리 환경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이용한다. 한국군은 적에 비해 수적으로는 열세일지 모르지만 이스라엘과 같은 불리함은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한국은 미군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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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처럼 군대에서의 경험을 창업을 하는 데 이용하도록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만약 한국이 자체 국방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한국도 민간기업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 국방비를 늘리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이 군대의 경험을 잘 이용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지난 50년간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은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인 상황과 군대에서 복무한 국민들의 경험이 일정 부분 이상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또한 이러한 어려움 덕분에 성공하려는 의지를 더욱 굳게 다졌다.”

―이스라엘의 경제적 성공은 문화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하지 않았나.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문화적인 요인은 모험과 토론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과 어려움을 혁신으로 극복하려는 성향이라고 본다. 좋은 아이디어만이 벤처의 성공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벤처 기업이 망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나라 자체가 유대인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벤처’ 아닌가. 이들은 타고난 모험가들이다.”

‘21세기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밀’이라는 부제목이 붙은 ‘창업국가’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국내에 출간된 뒤 한국 사회의 청년 실업 문제, 기업가 정신 쇠락 등과 맞물려 잔잔한 인기를 끌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600권을 출판사에 직접 주문했고 삼성그룹에서는 사내도서로 선정했다. KT에서는 이석채 회장이 필독서로 정한 뒤 임원들에게 인상 깊었던 이스라엘의 혁신사례에 대해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LG유플러스의 이상철 부회장도 임직원들에게 권유했고 중소기업청 김동선 청장은 전 직원 필독서로 지정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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