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동대문구 제기동 제기시장의 평일 오후 5시 풍경은 어떨까.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시장은 한산했다. 손님이 없어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던 상인 진용휘 씨(51)는 “21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데 요새는 하루 3만 원을 벌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7일 둘러본 제기시장은 2000년만 해도 시장 건물을 중심으로 100여 개의 점포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대형 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 등의 공세 속에서 30여 개 점포만 남은 채 활력을 잃었다. 25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김양순 씨(60·여)는 “생선이나 야채가게 등은 거의 다 없어지고 인근 고려대 학생들이 찾는 식당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문화와 역사 발굴 형식으로 바꿔야
1년 평균 30개. 전국에서 전통시장이 사라지는 속도다. 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이 중소기업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전통시장 관련 예산은 2003년 834억 원에서 2008년 2287억 원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전통시장은 1695개(5일장 포함)에서 1550개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5년 동안 1조 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오히려 시장은 145개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청 지원으로 특별히 여건이 개선된 곳도 거의 없다.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원은 주로 비 가리개인 ‘아케이드’나 화장실 설치 위주로 이뤄졌는데 건물에 입주해 있거나 화장실이 있는 시장은 그나마 지원도 받기 힘들다. 서울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아케이드는 통로가 없는 시장에는 설치할 수 없다”며 “이런 시장은 지원 신청조차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원종문 남서울대 유통학과 교수는 “일률적 시설지원이 아니라 시장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시장을 살릴 수는 없지만 시설 설치가 가능한지에 따라 지원여부가 결정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문화와 역사를 발굴하는 방식으로 선택과 집중을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젊은 사람 끌어들일 대책 마련 절실
주변 상권에 대한 지원 부족도 문제로 지적됐다. 제기시장의 경우 건물에 입주한 상인들로 구성된 시장과 주변 점포들이 하나의 상권으로 형성돼 있지만 주변 상가는 시장등록이 되지 않아 지원 대상이 아니다. 지원을 받지 못한 골목상권이 활력을 잃자 시장도 덩달아 휘청거렸다. 장흥섭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초기에는 예산 등의 문제로 시장위주 지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지만 시장과 주변 상점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상권 위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중기청이 전통시장 수요 진작을 위해 발행한 온누리상품권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상품권 월평균 판매액은 지난해 약 21억 원, 올해는 39억 원에 달하지만 소비자들은 불만이다. 시장상인들이 개별적으로 은행을 찾아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야 해 상품권 받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온누리상품권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는 12일 현재 전체 160건의 글 중 100여 건이 사용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글로 채워져 있었다.
여기에 상인들의 고령화도 전통시장의 퇴장을 부추기고 있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2008년 8월 현재 시장상인 중 50대 이상 상인 비율은 63%에 달했다. 재개발 중인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시장에서 52년 동안 쌀가게를 운영했던 이경수 씨(73)는 “재개발 뒤 시장상인들이 상가를 운영할 수 있게 했지만 입주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장상인들의 나이가 많아 다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젊은층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식의 지원책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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