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이나 되는 돈을 ‘쥐락펴락’하는 남자, 불혹을 훌쩍 넘긴 45세이지만 미혼이면서 여전히 30대의 외모와 체력을 유지하는 남자, 재계 순위 30위권의 웅진그룹 내에서 촉망 받는 최고경영자(CEO)…. 여러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김정식 웅진캐피탈㈜ 대표이사는 일하지 않는 날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해외에서 공직 생활을 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김 대표는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국제금융정책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미국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꼽히는 골드만삭스의 자산운용부서 아시아·동유럽 총책임 운용자를 지내는 등 일찍부터 월가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돈 버는 일이 취미”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가진 김 대표의 진짜 취미는 스쿠버다이빙. 그는 “스쿠버다이빙은 돈 벌어주는 취미”라고 귀띔했다. 매일매일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마음이 흐트러지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는데 스쿠버다이빙이 그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 태국에서 우연히 시작한 스쿠버다이빙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고 있는 김정식 웅진캐피탈 대표가 수많은 물고기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있다. 김 대표는 “바닷속 세상은 상상 그 이상”이라며 “일상에서 복잡했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웅진캐피탈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김 대표는 테니스의 경우 태국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닐 때 학교 대표선수로 선발돼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 골프도 평균적으로 ‘싱글’을 기록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주말이나 휴가 기간을 이용해 해외로 골프를 치러 가기도 하는데 김 대표가 스쿠버다이빙을 처음 만난 것도 사실은 골프를 치기 위해 해외에 나갔을 때였다.
“태국으로 골프 치러 갔는데 장시간 비행 후 바로 시작하는 스케줄이다 보니 몸의 밸런스가 흐트러지고 집중력도 현저하게 떨어져 공이 잘 맞지 않았어요. 그날 골프는 완전히 망치고 일찌감치 호텔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스쿠버다이빙 장비 매장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호텔 안에 있던 매장은 당시 한 번도 스쿠버다이빙을 해보지 않은 초보자들을 위해 기초 교육을 한 뒤 곧바로 바다로 나가 스쿠버다이빙을 체험해 보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김 대표의 첫 스쿠버다이빙 체험은 사진으로 남아 지금도 김 대표 컴퓨터의 바탕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스쿠버다이빙에 빠졌다. 스쿠버다이빙은 ‘운동광’인 김 대표를 2년 동안이나 사로잡고 있다.
○ ‘인어공주’ 만화영화 같은 바닷속 풍경
김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 스쿠버다이빙과의 첫 만남이 화제에 오르자 2년 전 처음 들어간 태국의 바닷속 풍경과 그날의 감동이 떠오르는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처음 본 그 모습은 환상과 고요함이 결합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 했다. 파란 배경 위에 온갖 색깔의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것은 화려함의 극치였고, 그렇게 화려하면서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극도의 고요함이 묘하게 결합해 있다는 것. 김 대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서 봤던 그 풍경이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구나”라며 감탄했다고 했다.
환상적인 첫 경험 후 한국에 돌아온 김 대표는 곧바로 스쿠버다이빙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스쿠버다이빙이 자못 육중해 보이는 장비 때문에 배우기 쉽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며 “국내에도 여러 교육기관이 있어서 쉽게 배울 수 있으며 장비를 직접 구입하지 않는다면 30만∼50만 원이면 기본 교육을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 교육은 4일 동안 교재를 통해 각종 이론을 공부하고 이어 5m 깊이의 풀장에서 스쿠버다이빙 기초를 실습하는 것으로 구성됐다. 김 대표는 기본 교육을 마친 뒤 2009년 초 필리핀에서 자격증 시험을 통과했다.
○ 머릿속을 한 번씩 백지 상태로 만들어
김 대표는 자격증을 딴 이후로는 주로 제주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고 있다. 특히 강원도는 김 대표가 즐겨 찾는 지역. 이 지역 바다는 사실 초보자에게는 다소 위험할 수 있지만 스쿠버다이빙을 더 많이 즐기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바쁜 다이버에게는 좋은 곳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한 뒤에는 바닷속과 지상의 압력 차로 인체의 여러 기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비행기까지 타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스쿠버다이빙을 한 지 최소 10시간 이상 지나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 그런데 주말을 이용해 제주도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할 경우 10시간이 지난 뒤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일요일에는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없다는 것. 반면 강원도는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 대표는 스쿠버다이빙의 가장 큰 매력을 묻는 질문에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 본 적 있느냐”는 질문으로 답했다. 김 대표처럼 수천억 원의 돈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머릿속이 항상 복잡하고 긴장해 있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골프장에 나가 드라이버 샷을 날리기 직전에도 딴생각이 날 정도란다. 하지만 바닷속에서만큼은 다르다는 것. 김 대표는 “바닷속에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며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엉킨 실타래가 확 풀리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스쿠버다이빙의 원칙은 자산운용 전문가들이 지켜야 할 원칙과도 비슷하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스쿠버다이빙에서 한 번의 사고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안전장치가 최우선이다. 김 대표와 같은 자산운용가들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위탁받아 투자하기 때문에 항상 안전장치를 마련해 둬야 한다는 것.
김 대표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몰디브나 갈라파고스 주변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것이 꿈이다. 물론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웅진캐피탈의 성공이 먼저다. 웅진캐피탈은 내년을 목표로 1조 원 규모로 스마트폰 관련 분야의 투자 자금을 모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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