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 대여-알선 당사자 처벌법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국회 관련법 2건 계류

태광산업과 신한금융그룹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허술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 개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행 금융실명법은 금융거래 시 실명 확인을 하지 않은 금융회사 직원에 대해서만 처벌하도록 돼 있을 뿐 차명계좌를 개설해 금융거래를 한 당사자에 대한 처벌규정은 없다. 하지만 기업이나 금융회사 최고경영진이 재산관리인을 통해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거래한 혐의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는 차명거래 금지를 뼈대로 한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2건 계류돼 있다.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차명계좌를 대여하거나 알선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차명거래자에게 계좌자산의 3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거나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두 법안은 국정감사 이후 본격적인 심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차명거래가 상속세 등을 회피하거나 불법 거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조세포탈이나 자금세탁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조치가 검토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차명거래를 통해 조세를 포탈할 땐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포탈세액의 최대 5배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범죄수익을 차명계좌에 은닉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차명거래를 원천적으로 금지할 경우 가족이나 각종 모임에서 계좌 명의자와 자금 소유자가 합의 아래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관행 역시 불법으로 규정돼 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차명거래를 금지하더라도 금융회사가 자금의 실소유주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상호 합의 아래 이뤄져온 차명거래를 일괄적으로 처벌할 경우 발생할 혼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차명거래에 대한 금융기관의 추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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