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아파트에 ‘꿈나무 교실’ 삼성토탈이 충남 서산공장 인근 사원아파트 내에 운영하는 ‘꿈나무 교실’에서 사원 자녀들이 책을 읽고 있다. 꿈나무 교실을 찾은 어린이들은 삼성토탈 임직원 아내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자원봉사자들이 늦은 시간까지 보살펴 준다. 사진 제공 삼성토탈
생산성을 높이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끝이 없다. 빡빡한 업무 매뉴얼을 들이밀기도 하고,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내에 카페나 오락실을 만들기도 한다. 한동안 ‘펀(fun)경영’ 열풍이 분 것도 결국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는 날로 심해져 ‘회사 우울증’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기업들이 ‘회사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루 중 고작 9시간을 보내는 회사가 아닌 ‘나머지 15시간’에 주목한 기업들은 가정과 개인의 문제 치유와 즐거움을 찾아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15시간이 행복해야 9시간이 행복하다
삼성토탈의 충남 서산공장 인사팀에서 일하는 김예환 차장은 올해 초 이산가족 신세를 면했다. 교육 문제 때문에 서울에 따로 살던 아내와 아이들이 공장 인근 직원주택으로 이사한 것. 김 차장이 과감히 이사를 결정한 이유는 삼성토탈이 홈퍼니(homepany) 경영의 하나로 추진한 ‘아이비스쿨’ 덕분이었다. 삼성토탈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지방 직원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지난해 5월 석박사급 직원 10여 명이 다른 직원의 자녀를 가르치는 공부방 ‘아이비스쿨’을 만들었다. ‘사(社)교육이 사(私)교육 책임진다’는 모토답게 중고교생 200여 명이 몰려들면서 서울에 있던 직원 가족들까지 속속 합류하고 있다.
삼성토탈은 홈퍼니의 핵심은 회사가 아니라 가정이라고 전제하고, 이어 가정의 핵심은 ‘자녀 교육’과 ‘아내의 성취감’으로 분석했다. 남자 직원이 많은 업종 특성상 아내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10개의 ‘주부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150여 명의 주부 위원은 생태 체험, 역사유적 방문, 정보화 교육 등을 직접 설계해 자녀들을 지도한다.
한화그룹의 ‘아빠, 엄마가 쏜다’라는 이색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매달 한 번 직원 한 명을 선정해 자녀가 다니는 학교 전체에 피자를 보내는 것. 한화 관계자는 “직원의 가정 내 위상이 높아지면서 직원의 성과도 높아지고 회사와 가족 간 신뢰감도 커진다”고 말했다. LG생명과학은 매월 둘째 주 금요일을 ‘패밀리 데이’로 정해 오후 5시에 ‘칼퇴근’하게 하고, 넷째 주 수요일은 ‘치어업 데이’로 정해 가족들과 공연 또는 영화를 보도록 한다. 임신이 안 돼 고민하는 직원을 위해 체외수정 수술까지 지원한다.
교보생명은 3세 미만 자녀를 둔 직원에 한해 하루 5∼7시간만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LG CNS는 육아지원 전문 사회복지법인인 한솔교육희망재단과 함께 ‘육아 콘서트’ ‘육아 워크숍’ 등을 진행한다.
○회사 우울증도 회사가 책임진다
7년 차 직장인 심모 씨(33)는 최근 회사를 석 달가량 쉬어야 했다. 업무가 힘들거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같은 팀 선배와의 불화가 너무 심해 팔 저림 증상까지 나타나자 의사의 휴직 권고를 받게 됐다.
심 씨처럼 출근만 하면 무기력하고 힘들어하는 ‘회사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있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5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3명 중 2명(62.9%)은 회사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회사 우울증은 업무 자체보다는 선후배 등 대인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우울증은 절망, 자신감 상실, 비탄 등의 감정이 나타나는 반면에 회사 우울증은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특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주요 대기업은 직장 내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며 직원들을 다독이고 있다. SK는 서울 중구 서린동 본사에서 ‘하모니아’라는 상담서비스를 진행한다. 이곳은 팀별, 가족별 상담 등 그룹 상담을 중시한다. 직원들의 가정 내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직원 가족을 대상으로 한 상담도 한다. 김현희 상담실장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는 대화 방식은 직장 내 부하 직원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가정 갈등을 치유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직장 내 갈등 치료도 된다”고 말했다.
LG는 계열사마다 심리상담소를 두고 있다. 서울 서초구 LG전자 연구개발(R&D)센터 상담소 ‘맘풀이’는 건강검진과 심리상담을 함께 진행한다. 박경희 상담실장은 “건강검진 결과 스트레스성 질환인 고혈압, 위염 등이 나타난 직원에게는 심신풀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전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홈퍼니(Homepany) ::
‘가정(Home)’과 ‘회사(Company)’를 합친 것으로 직원들이 가정과 직장 생활을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 ‘가족친화기업’을 가리킨다. 초기에는 직원들을 위해 회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홈퍼니 경영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직원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육아, 교육, 가족 간 소통 등의 구체적인 가정 문제를 기업들이 나서서 해결해 주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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