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근교에 위치한 베올리아의 메리쉬르우아즈 정수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나노 막 여과 시스템을 갖춘 최신식 정수장이다. 이곳에서는 하루 최대 34만 t의 물을 처리할 수 있다. 사진 제공 베올리아
세계 물 시장은 몇몇 국가가 높은 진입 장벽을 치고 있다. 세계 1, 2위 수처리 운영서비스 회사인 베올리아, 수에즈를 보유한 프랑스도 그중 하나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부설 지역경쟁력센터와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물 경쟁력 선도국가(W20)를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평가에서 프랑스는 물 산업 기반 경쟁력 분야에서 미국 영국 독일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독특한 민관 협력 체계를 통해 육성한 글로벌 물 기업의 성장과 물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한 정부의 정책 노력이 결집된 결과다.
○ 자국 시장에서 쌓은 수자원 관리 역량
프랑스는 독특한 민관 협력체계를 토대로 수처리 운영 서비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쌓아왔다. 1800년대 상수도 보급이 시작된 이후 민간 기업이 정부로부터 상하수도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그 대신 상하수도 시설 소유권, 수도 요금 같은 핵심 정책 결정권은 지자체가 갖는다. 베올리아의 전신인 제네랄 데 조가 1853년 리옹 시와 맺은 계약은 세계 최초 상수도 분야 민관 협력 계약으로 불린다.
프랑스 물 기업은 자국 시장의 오랜 경험을 활용해 진입 장벽이 높은 세계 수처리 시장을 공략했다. 베올리아와 수에즈는 각각 전 세계 1억6300여만 명, 1억1200여만 명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베올리아의 해외 사업 매출 비중은 50%가 넘는다. 올해 파리 시가 상수도 분야를 공영화했지만 프랑스 물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크리스티앙 하비에 베올리아 총괄 이사는 “각국의 물 자원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어 그에 맞는 기술과 관리가 필요하다”며 “프랑스 기업은 ‘다양한 물’에 대한 기술과 오랜 경험이 축적돼 있다”고 강조했다.
○ 프랑스 물 기업,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
영국의 물 관련 조사기관 ‘글로벌 워터 인텔리전스(GWI)’에 따르면 2010년 세계 물 시장 규모는 4828억 달러(약 579조 원)다. 2025년에는 8650억 달러(약 1038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하는 추세지만 아시아, 중동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물 관련 인프라(사회간접자본) 투자 및 민영화 추세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 물 기업은 신흥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핵심 경쟁력인 운영 및 관리 분야에서 수처리 관련 소재, 플랜트 건설 및 시공, 컨설팅과 금융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02년부터 중국 상하이 시 상수도 관리를 맡고 있는 베올리아는 이곳에서 상수도 관리, 수질 분석, 누수 등 위험 관리는 물론 콜 센터까지 포함한 원 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활발하다. 500명이 넘는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는 베올리아는 R&D에만 연간 1억 유로가 넘는 돈을 투자한다. 또 자체적으로 2년 과정의 기술 학위(diploma) 과정을 운영하며 물 전문가를 키워내고 있다. 프랑스는 이번 W20 조사에서 물 산업 기술과 투자 수준 분야에서 각각 4위에 올랐다.
○ 정부는 국제 표준화 주도
프랑스 정부는 자국 물 기업의 해외 진출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1994년 국제 유역 네트워크(RIOB)라는 기구를 설립해 프랑스식 유역관리 모델을 세계 시장에 홍보해 왔다. 물 산업 관련 국제 표준 제정 작업도 주도하고 있다. 상하수도의 국제 표준 제정을 위한 국제표준화기구(ISO) TC224 회의도 프랑스 정부 주도로 2002년 파리에서 처음 열렸다. 기술 경쟁력 우위는 경쟁자가 모방하기도 쉽지만 기술 표준화를 주도하면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번 W20 평가에서 프랑스는 물 관련 네트워크 조성, 전문가 확보, 정부의 정책적 지원 항목에서 고루 상위권에 포진했다.
파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한국 경쟁력 20개국중 13위… 지능형 분야 뒤처져 ▼
웅진그룹은 산업용 수처리 시장에 진출해 물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사진은 웅진코웨이의 멤브레인(액체, 기체 등의 혼합물질을 선택적으로 투과해 분리하는 소재) 기술이 적용된 하수 처리 시설. 사진 제공 웅진코웨이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지역경쟁력센터와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물 경쟁력 선도국가(W20)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물 산업 기반 경쟁력은 평점 3.24점(5점 만점)으로 조사 대상 중 13위로 평가됐다. 물 자원을 활용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역량이 세계 물 경쟁력 상위 20개 국가 중에서도 중위권에 육박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중대형 정수장용 막 분야 기술에서 선진국을 추격하고 있다. 웅진케미칼은 1994년 역삼투압 방식의 멤브레인(액체, 기체 등의 혼합물질을 선택적으로 투과해 분리하는 소재) 기술을 개발해 냈다. 미국의 다우와 일본의 도레이가 장악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 한국의 수처리 시설 시공 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두산중공업은 증류식 해수 담수화 분야에서 세계 1위(점유율 40%)다.
하지만 물 산업 전반에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여전히 크다. 환경부에 따르면 선진국 대비 한국의 물 산업 경쟁력은 △상수 75% △하수 80% 수준. 특히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스마트 상수도는 65%, 지능형 상수관망은 55%에 그쳐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국내 물 시장 규모가 작고 공공 부문이 상수도 운영·관리를 전담해 민간 기업의 상수도 운영관리 참여나 물 시장 투자 기회가 적은 게 낮은 경쟁력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국내 기업은 필터 등 첨단 소재, 수처리 운영·관리, 설계·시공 등 물 산업 가치사슬의 전반에 걸쳐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역량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웅진그룹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웅진케미칼(수처리용 필터)-웅진코웨이(막 분리 공법 수처리)와 그린엔텍(고도 수처리)-극동건설(수처리 플랜트 건설) 등의 수직 계열화 작업을 마쳤다. 공공부문과 민간 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뤄 국내 물 산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이 실적을 토대로 해외 시장을 뚫는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첨단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을 키운 일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최근 20년간 물-기름값 비슷하게 올라… 물투자 매력” ▼ 스위스 물펀드 매니저 비쇼
“최근 20년간 물 가격과 유가의 상승률이 비슷하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유가는 롤러코스터처럼 가격 변동성이 크지만 물 가격은 꾸준히 오르는 추세입니다.”
스위스 자산관리회사인 픽텟(Pictet)의 아르노 비쇼 인베스트 매니저(사진)는 “물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산”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픽텟의 분석 결과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물 가격은 연평균 6.4%, 유가는 7.7% 각각 상승했다. 하지만 가격 변동성은 물 가격이 3.8%에 그쳤고 유가는 49.2%나 됐다. 픽텟은 자산 3580억 달러 규모로 2001년부터 각국 물 관련 기업 70여 곳에 투자하는 물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물이 매력적인 투자 대상인 이유는….
“세계 물 시장은 매년 6%씩 성장한다. 지구상의 물 중 바닷물과 빙하 등을 제외하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수자원은 0.01%이다. 게다가 인구 증가, 도시화와 기후변화로 물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 2030년 물 수요는 지금보다 25% 늘어난다.”
―물 펀드 중 수익률이 좋은 투자기업은 어디인가.
“프랑스 베올리아 등 상하수도 운영 회사와 지멘스를 비롯한 전기·시스템 통합회사다. 물 재처리, 집수와 같은 물 관련 인프라(사회간접자본)에도 투자한다. 운영과 인프라 기업에 각각 40%, 30% 투자한다. 한국의 웅진도 투자 대상이다.”
―선진국 물 시장의 성장률은 정체되지 않는가.
“세계적으로 2005∼2030년 22조6000억 달러가 물 관련 인프라에 투자된다. 이 중 40%가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에 집중돼 있지만 유럽(20%)과 미주지역(16%)도 무시하기 어렵다. 선진국의 낡은 상하수도관 교체 수요도 적지 않다. 미국 뉴욕의 일부 관은 200년 전 매설해 나무로 돼 있다고 한다. 선진국의 수질 규제 강화도 사업 기회다.”
―세계 물 산업 트렌드는 무엇인가.
“민영화로 물 펀드 투자 대상 기업이 많아졌다. 2000년 초반 민간 물 시장에서 베올리아와 수에즈, 소어, 독일의 RWE 등 4개사가 점유하는 비율은 80%나 됐지만 지금 20%로 줄었다. 민간 물 기업의 전체 물 시장 점유율은 현재 12%에서 2015년 16%로 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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