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환매 찬바람 속에서도 활짝… 수익률 고공행진
펀드시장 “썰물→밀물” 자금 U턴… “내년 다시 봄바람”
《14조5484억 원.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순유출된 액수다. 펀드로 새로 들어온 자금보다 빠져나간 돈이 이만큼 더 많았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펀드 환매 홍수의 시대였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올 4월 월별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3조9768억 원이 순유출된 데 이어 6월부터 5개월째 순유출 행진이 이어졌다. 특히 지난달 2일부터 이달 12일까지 한 달 넘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모두 4조2000억 원이 넘게 이탈했다. 지난달 2년여 만에 1,800을 넘은 코스피가 한 달도 안 돼 1,900까지 돌파하자 본전을 되찾은 투자자들이 서둘러 펀드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해외 주식형펀드는 더 심각하다. 작년 7월부터 매달 순유출이 계속되며 이달까지 총 10조 원 넘게 탈출했다. 올 4, 9월엔 한 달에 1조 원 넘게 빠져나가기도 했다.》 ○ 내년 ‘펀드 붐’ 다시 온다
하지만 초저금리 장기화로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펀드로 눈 돌리는 투자자들이 다시 늘고 있다. 이달 19일 환매보다 새로 들어온 자금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21일 국내 주식형펀드로 1002억 원의 뭉칫돈이 순유입됐다. 하루 순유입액이 1000억 원을 넘은 것은 지난달 1일(1022억 원) 이후 처음. 은행, 증권사 창구에도 펀드 가입을 문의하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에 펀드 자금 유입이 본격화되면서 펀드 투자 붐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은행 예금금리가 2%대로 추락하고 부동산 시장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마땅히 투자할 데가 없는 데다 무엇보다 내년 코스피가 2,300∼2,500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계속된 펀드 환매로 국내 가계의 순금융자산에서 주식형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지만 4분기나 늦어도 내년 1분기 주식형펀드로 완연한 순유입이 나타날 것”이라며 “저금리, 부동산 가격 안정 등 지금의 금융시장 환경이 과거 펀드 붐이 일었던 시기와 너무도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 수익률 높은 가치주, 중소형주 펀드 내년에 더 각광
한동안 외면했던 펀드 투자에 다시 나선다면 어떤 상품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을까. 대량 환매 속에서도 꾸준히 투자자들의 러브 콜을 받았던 펀드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이 연초부터 이달 20일까지 ETF를 제외한 주식형펀드의 자금 유출입을 집계한 결과 1000억 원 이상 순유입된 국내 주식형펀드는 9개였다. 설정액 규모 3000억 원 미만인 소형 펀드, 설정 시기 2008년 이후의 신생 펀드가 특히 많았다.
대표적 삼성그룹주 ‘한국투자 삼성그룹적립식2’에 가장 많은 돈(4303억 원)이 몰렸고 삼성·LG·포스코·현대중공업 등 4대 그룹에 분산투자하는 ‘KB한국대표그룹주’(3375억 원), 글로벌 경쟁력 있는 업종 대표 기업에 투자하는 ‘한국투자 한국의 힘1’(3316억 원) 등 성장형 펀드가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4∼18%대였다.
알리안츠GI자산운용의 ‘알리안츠 기업가치향상 장기펀드’도 3464억 원을 끌어 모으며 연초 이후 24%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이 펀드는 중대형 가치주와 성장주에 60% 정도 투자하는 동시에 지배구조 개선 기업에 30% 투자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며 장기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쓴다.
같은 운용사의 ‘알리안츠 베스트 중소형 펀드’도 1900억 원 이상을 새로 끌어들였다. 성장성 있는 중소기업을 초기에 발굴해 투자하는 펀드로 연초 이후 수익률도 31.10%에 이른다. 가치주에 주로 투자하는 ‘KB 밸류 포커스’도 2015억 원을 빨아들이며 연초 이후 34.73%의 높은 수익을 거뒀다. 가치주와 중소형주에 투자하는 덩치 작은 펀드들이 탄력적인 운용을 통해 대형 펀드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둔 것이다. 조완제 삼성증권 연구원은 “내년 경기확장 국면에서 가치주와 중소형주 펀드 등 그동안 소외받았던 상품이 부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학균 팀장도 “펀드로 자금 유입이 재개되면 배당주와 중소형주의 강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중국 본토 펀드 인기 계속돼
해외 주식형펀드는 자금 순유입 1000억 원 이상인 상품 6개 가운데 4개가 중국 본토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였다. 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중국 본토 펀드의 인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펀드 투자 열풍이 불던 2006, 2007년 만들어진 설정액 1조 원 이상의 차이나 펀드는 대량 환매가 일어난 반면 작년과 올해 나온 신생 중국 펀드는 꾸준히 자금을 끌어들였다.
중국 본토 펀드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PCA자산운용의 ‘PCA 차이나 드래곤 AShare’ 환헤지형은 가장 많은 1914억 원이 몰렸다. 올해 2월 나온 ‘한국투자 네비게이터 중국본토’도 1600억 원 이상이 들어왔다. 삼성자산운용이 작년 2월 내놓은 ‘삼성차이나 2.0 본토’에 올해 1294억 원이 유입된 데 이어 이달 초 선보인 ‘삼성차이나 본토 포커스’도 1412억 원이 몰렸다. 임세찬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최근 중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단기 조정을 받을 수 있지만 중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2배 수준으로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며 “내년 경제성장률이 다소 둔화되더라고 내수소비 확대로 안정적 성장 국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중국 펀드의 매력은 여전히 크다”고 설명했다. 이수현 현대증권 연구원은 “긴축 정책 리스크에도 중국 기업 이익 개선, 위안화 강세 등으로 투자 여건은 좋아지고 있다”며 “중국 펀드의 투자 비중을 확대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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