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 “재계 상징 건물에 우리 기술을…”
외국계 회사들 “다른 나라와 관계 중요시하려면…”
지하 6층, 지상 50층 규모로 짓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축 회관의 엘리베이터를 누가 설치하느냐를 놓고 토종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와 외국계 엘리베이터 회사들 간에 자존심을 건 싸움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한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 엘리베이터 도입 100주년에 토종-해외 업체 격돌
현대건설과 쌍용건설, STX건설 컨소시엄이 짓는 새 전경련회관은 9월 기공식을 열었으며 2013년 완공 예정이다. 11월 말 선정될 이 건물 엘리베이터 공급업체는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현대엘리베이터와 매출액 1위인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를 비롯해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 한국쉰들러 등 국내 대형 엘리베이터 업체들이 대부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후 한국 회사를 사들이는 방법 등으로 외국계 회사들이 대거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서 ‘토종’ 대형 엘리베이터 회사는 현대엘리베이터 한 곳만 남은 상태다.
재계의 아이콘이고 여의도의 랜드마크 건축물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크지만, 전경련회관 엘리베이터 수주는 엘리베이터 업계에 단순한 자존심 대결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고수익 제품인 분속 300m 이상 초고속 엘리베이터 시장에 들어오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시장 점유율이 1위지만 자신들의 테스트타워 외에 아직 국내에서 초고속 엘리베이터 수주 실적이 없다.
안전 문제가 중요하고 기술이 까다로운 초고속 엘리베이터 시장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현대엘리베이터로서는 이 벽을 뚫지 못하면 서울과 부산에서 막 건설 붐이 일고 있는 초고층빌딩 시장을 손놓고 지켜봐야 한다.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서라도 전경련회관 엘리베이터를 꼭 수주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값을 내리고 전략적 수주를 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 “전경련에 외국계 제품은 안 된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테스트타워에 분속 1080m 제품을 설치했고 해외 전문가들도 인정할 만큼 기술력은 충분하다”며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전경련이 외국계 엘리베이터를 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강조했다. 외국계 기업들도 자국에서 공공기관 등의 수주를 받아 첫 실적을 내고 해외로 진출한 만큼 전경련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외국계 회사들은 “단순히 빨리 가는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건 쉬운 기술”이라며 “실제 공사 현장에서 건물에 맞게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때에는 돌발 변수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는데 현대엘리베이터는 그런 노하우가 모자란다”고 반박했다. 한 외국계 회사 관계자는 “전경련은 외국과의 관계도 중요한 단체”라며 “글로벌 경쟁 시대에 제품의 국적을 운운하는 것은 국수주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경련 관계자는 “발주처가 뭐라고 얘기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시공사가 가장 품질이 뛰어나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업체의 제품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