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차관 회의가 시작된 가운데 중국 정부가 미국의 양적 완화를 G20 서울 정상회의의 의제로 논의하자고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항상 미국이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먼저 요구하면서 환율 전쟁이 촉발됐지만 이번에는 중국이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다. 미국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날 오후 중국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 브리핑에서 중국 정부는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를 이번 주 열리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논의하자”고 밝혔다. 지난주 외교부 고위 관리가 미국에 이 조치에 대한 설명을 주문한 수준에서 더 나아간 것이다. 이 브리핑에는 주광야오(朱光耀) 재정부 부부장, 이샤오준(易小准) 상무부 부부장,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장조리, 진중샤(金中夏) 런민(人民)은행 국제사(司) 부사장이 참석해 중국 측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주 부부장은 “미국의 2차 양적 완화 조치는 기축통화 발행국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과도한 유동성이 신흥 국가에 몰고 올 영향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량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 금융기구에 필요한 것은 자금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 대한 신뢰”라면서 “이런 상황 아래 추진한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는 많은 국가의 의문을 사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 부부장은 또 “G20 정상회의 직전에 나온 양적 완화 조치에 의문이 있기 때문에 미국과 솔직한 의견 교환을 원한다”며 “미국은 책임 있는 거시경제 정책을 취하는 것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앞서 5일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은 미국에 양적 완화 조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바 있다.
국내 환율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제2차 환율전쟁의 신호탄이라기보다는 서울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기세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지속가능 균형성장 프레임워크(협력체계)를 논의할 때 중국의 위안화 절상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이 선수를 쳐서 미국의 양적 완화를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경북 경주에서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환율에 대해 합의할 때 중국도 본국과 연락하며 의견조율을 다 이뤘다”며 “경주 합의를 해놓고 갑자기 미국의 양적 완화를 거론하는 것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자국이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미국의 양적 완화는 환율을 직접 조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율 문제의 핵심에서 비켜나 있다”며 “중국이 미국의 양적 완화를 지적해 서울 정상회의에서 위안화 절상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사전에 막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 역시 미국의 양적 완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환율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 모습이다. 주 부부장은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위안화 환율 절상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세계 경제회복 속도가 여전히 완만한 상황에서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주요 20개국 간의 정책 협조와 소통 강화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수준의 답변을 했다.
한편 8일 오후 7시부터 코엑스에서 시작된 재무차관 회의에서 20개국 재무차관들은 정상들이 발표할 성명서(코뮈니케) 초안을 만들며 대부분의 시간을 금융규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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