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한국과 리비아의 외교관계가 최대 위기에 놓였을 때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해결사로 나섰던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의원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직접 만나 두 나라 사이에 꼬인 외교 갈등을 푸는 데 기여한 숨은 주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이 의원이 문제를 해결하고 귀국했을 때 이 의원과 나란히 들어온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이 바로 그다.
최근 주요 건설사들이 해외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부동산경기 침체가 길어져 해외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무작정 수주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건설사들은 길게는 수십 년간 특정 국가에 공을 들여 쌓아놓은 친분관계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신뢰는 해외 진출의 최대 무기
해당 국가와 건설사 간에 오랜 기간 다져진 신뢰 관계는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가장 큰 무기다. 대우건설은 과거 김우중 회장 시절부터 리비아에 정성을 쏟아왔다. 이후 현지에서 수행한 사업에 좋은 평가가 이어지면서 최근까지도 대형 수주에 연이어 성공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리비아와의 외교마찰을 해결하는 데에도 대우건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서 사장은 카다피 국가원수와 독대할 수 있는 한국 내 유일한 인사로 손꼽힐 정도다.
1973년 한국 건설사 가운데 중동지역에 처음으로 진출한 대림산업도 중동 국가들과 맺은 끈끈한 관계로 유명하다. 이 덕분에 200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 건설업체에 맡겼던 플랜트 사업을 대신 맡아달라고 대림산업을 찾아오기도 했다. 사업주가 요구하는 공사기간과 기술수준을 맞출 수 있는 건설사가 대림산업밖에 없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결국 대림산업은 올해 국내 건설사 중 최대 규모인 2조 원의 얀부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따냈다. 사우디 국민은 대림산업 근로자들을 일컬어 ‘오른손에는 용접봉, 왼손에는 빵’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현지 주민과 근로자들에 대한 헌신도 건설사들에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꼽힌다. SK건설은 2003년 미국이 쿠웨이트를 폭격하기 3시간 전까지도 현장 철수를 미뤘다. 다른 외국 기업들은 폭격 소식에 앞다퉈 빠져나가기 바빴지만 SK건설은 의연하게 현지 근로자들과 제3국 노동자들을 챙겼다.
○고유 강점을 활용한 해외공략도
해외 진출 역사가 짧은 건설사들은 자신들만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다. 해외 진출 후발주자인 포스코건설은 국내 건설사들이 많이 진출한 중동이나 아프리카 대신 중남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2006년 칠레의 벤타나스 석탄화력발전소 수주에 성공하며 국내 건설사 중에는 최초로 중남미 에너지 플랜트 시장에 진출했다. 이때 포스코건설은 현지 정부와 국민에게 ‘한국 기업이 하는 모든 것은 확실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를 통해 포스코건설은 페루에서도 플랜트 사업을 수주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쌍용건설이 싱가포르 한복판에 완공한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은 21세기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불린다. 싱가포르 현지에서는 이 호텔을 지은 쌍용건설의 기술력 덕분에 택시만 타더라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삼성’과 ‘쌍용’을 가장 먼저 외친다는 것.
김태엽 해외건설협회 정보기획팀장은 “건설사의 해외 수주는 그 액수나 파급효과를 따지면 국가 차원의 업무라고 할 수 있다”며 “해외건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예산 확보, 해외건설 정보네트워크 구축, 금융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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