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경합 중인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은 입찰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냈고, 입찰 제안서의 가격 표시란만 비워 놓고 있다. 그룹 총수가 직접 결정하는 입찰가는 인수 당일에도 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입찰가로 얼마를 적어낼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과거 대형 인수합병(M&A) 사례를 보면 인수가를 좌우하는 변수는 해당 기업의 자금력과 그룹 총수의 인수 의지, ‘베팅 성향’ 등 3가지였다. 통상 인수 의지가 강하면 인수가도 높게 적어내기 마련이지만, 자금이 충분해도 그룹 총수의 ‘손’이 작아 입찰액을 너무 낮게 적어내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자금력은 현대차그룹이 우세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대차그룹은 주력 3사인 현대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로 인수컨소시엄을 결정하기로 했다.
현대그룹은 전략적 투자자로 입찰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던 M+W그룹이 막판 인수 의사를 철회함에 따라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동양종합금융증권을 재무적 투자자로 유치해 급한 불을 껐다.
인수 의지만 놓고 보면 현대건설을 인수하지 못할 경우 그룹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는 현 회장이 더 절박해 보이지만, 여러 이유로 현대건설이 필요한 정 회장 역시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은 변수는 두 회장의 베팅 성향. 정 회장은 2004년 한보제철 인수 당시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준 바 있다. 한보제철 인수를 놓고 포스코-동국제강 컨소시엄과 경합했던 정 회장은 입찰 당일 인수가격을 500억 원 높일 것을 지시했다. 뚜껑을 연 결과 현대차그룹의 인수주체였던 INI스틸(현 현대제철)과 포스코-동국제강 컨소시엄은 나란히 9100억 원대를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가 비가격 요소에서 앞섰지만 그 격차가 박빙이었기 때문에 정 회장이 입찰가를 높이지 않았다면 입찰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현 회장은 이번이 M&A 데뷔 무대이기 때문에 ‘베팅 성향’이 드러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현 회장이 그동안 현대상선 경영권을 놓고 벌인 KCC와의 분쟁 등에서 보여준 배포를 보면 정 회장 못지않다고 이야기한다. 재계 관계자는 “현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봤을 때 인수 가격 역시 예상 밖의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고 말했다.
초기만 해도 3조5000억∼4조 원에서 인수가가 결정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인수전이 과열되고, 현대건설이 보유한 ‘알짜 자산’이 부각되면서 5조 원 안팎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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