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부인과 대기실에서의 일이다. 남편들이 아내의 출산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분만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결과를 알려주었다. “한남동에서 오신 손님, 사내아이 한 명입니다.” “쌍문동에서 오신 손님, 딸 쌍둥이예요.” “삼성동에서 오신 손님, 아들 세 쌍둥이군요.” “사당동에서 오신 손님, 공주 네 쌍둥이입니다.” 이때 그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큰일 났다! 나는 구로동에서 왔는데….” 그러자 한쪽 구석에서 계속 담배만 피우던 남자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여보슈,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천호동에서 왔수다!”
잘 올라가던 주식시장이 외국인투자가의 대량 매도와 각종 악재가 부각되면서 크게 떨어지기 시작하자 아직 주식을 팔지 못한 투자자들이 유명한 증권분석가를 찾아가 상담했다. “하나투어요? 단기 낙폭이 크니 한 번 정도 더 하락하면 진정되겠군요.” “두산인프라코어요? 그동안 많이 올라서 두 번은 더 내려야 반등하겠군요.” “세미텍요? 최근에 단기 급등했기 때문에 세 번 정도 더 빠져야 될 것 같군요.” “네오위즈요? 거래량이 줄고 있어서 네 번쯤은 하락해야 차츰 반등할 것 같네요.” 이때 그 옆에 앉아있던 투자자가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소리쳤다. “큰일 났다! 나는 백광산업을 갖고 있는데….” 그러자 한쪽 구석에서 줄담배만 피우던 투자자가 하늘이 무너질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보슈,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만호제강 주식을 신용까지 걸어서 잔뜩 샀단 말이오!”
상장기업의 이름에 따라 주가가 며칠씩 오르거나 내리지는 않겠지만 많은 상장기업이 이름을 잘 짓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상호를 가져야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주가도 올라갈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벤처기업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을 전후해서는 많은 상장기업이 기술, 공업, 산업 등 굴뚝 냄새나는 이름을 버리고 닷컴, 테크, 텔레콤 등 최첨단 이미지의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유행이었다. 과거에는 상장기업의 이름만 보고도 대충 어떤 업종에 속하는 회사인지를 알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회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게 됐다. 또 대주주가 자주 바뀌면서 그때마다 수시로 이름을 바꾸는 기업들도 있어서 혼란을 주기도 한다.
투자자들도 소중한 자산을 투자하면서 어떤 기업인지 잘 모르는 때가 많다. 1970년대에 중동 건설 붐으로 건설주들의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열풍이 불자 건설주를 사지 못한 어느 투자자는 페인트 회사인 ‘건설화학’을 건설주인 줄 알고 샀다는 일화도 있다. 의료기기 업체인 ‘코리아본뱅크’를 은행업종으로 생각하는 투자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도 일부 투자자들은 주변에서 누가 어느 종목에 좋은 정보가 있다고 하면 그 회사가 무엇을 만들며 기업 내용은 어떤지 검토해 보지도 않고 대뜸 주식부터 사고 보는 묻지마 투자를 한다. 회사 내용도 모른 채 일단 주식을 사고 나서는 그때부터 그 회사가 어떤 업종에 속하는지 최근 실적은 어떠했는지를 상장회사 핸드북을 뒤적거리며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투자의 순서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주식을 사기 전에 신중히 그 회사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해당 업종이 현재 성장세를 타고 있는 업종인지 살펴보고 그 업종 안에서 1등 군에 속하는 회사인지도 알아봐야 한다. 분기별로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지도 조사해보고 최근 주가가 너무 단기간에 급등하지는 않았는지 등 기초적인 조사를 한 후에 매입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순서라고 하겠다.
얼마 전에 한 투자자는 필자를 만나 요즘 같은 활황장세에서도 큰 손해를 보았다고 하소연했다. 어떻게 투자했기에 손해를 봤냐고 물었더니 주식을 잘한다는 후배가 이것저것 사보라는 종목들을 무슨 회사인지도 모른 채 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 두 회사가 최근에 상장폐지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 투자자는 주식을 매입한 후에도 어떤 회사인지 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묻지마 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필자는 그에게 가급적 간접투자를 하라고 처방을 내려줬다. 투자도 유비무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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