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주택 재고시대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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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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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야생 양 한 무리가 있었다. 멀리서 사냥꾼 한 사람이 다가와 양 한 마리를 잡아 죽였다. 나머지 양은 ‘설마 내가 잡혀 죽겠느냐’는 생각에 이렇게들 말했다. “그냥 내버려두자. 설마 사냥꾼 한 사람이 우리 모두를 없앨 수 있겠어?” 하지만 야생 양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 마리, 두 마리 죽어나가는 양이 늘어났다. 결국 마지막 양이 사냥꾼의 손아귀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이렇게 모두 희생당하다니…. 처음 한 마리가 죽었을 때 내버려두는 게 아니었어. 힘을 합쳐 사냥꾼을 몰아냈어야 하는 건데.”

이솝 우화를 뒤적거리다 이 대목에서 눈길이 멈췄다. 최근 국내 건설업계가 놓인 상황과 이 얘기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사냥꾼은 ‘주택 공급 과잉’이고 야생 양은 건설사의 은유인 듯했다. ‘상시 수요 초과’ 현상에 익숙해진 건설사들에 요즘의 ‘공급 초과’는 일과성 현상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냥꾼 한 사람이 우리 모두를 어쩌겠느냐고 가볍게 여긴 야생양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어느덧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재고 상품’이 늘 존재하게 됐다. 주택 재고시대라는 표현은 국내 부동산개발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 구분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시대적 전환이라는 무게가 얹혀 있다는 뜻이다. 많은 전문가도 현시점의 공급 초과는 국내 주택시장을 과거와는 다르게 규정짓는 신호라고 진단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국내에서는 주택 수요가 공급을 밑돈 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설사가 집을 지어놓으면 어찌됐든 비싸게 팔려나갔다.

그렇다면 국내 건설사들은 새 부동산시대에 걸맞은 경쟁력의 폭과 깊이를 갖추고 있을까? ‘걱정 말라’고 선뜻 대답하기보다는 왠지 멈칫하게 된다. 이현석 건국대 교수는 “10, 20년 전에도 건설사가 경쟁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국내 주택시장이 좋아지면 이내 흐지부지되곤 했다”고 말했다. 대형건설사가 해외에서 활약하는 플랜트 분야만 해도 시공 엔지니어링 능력 정도만 갖췄을 뿐 가스액화와 같은 원천기술은 선진국 건설사가 보유하고 있다. 토목에서는 싼값을 앞세운 중국이 무섭게 잠식해 들어와 갈수록 입지가 좁아진다고 건설사들 스스로 인정한다.

물론 몇몇 대형건설사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대우건설이 베트남 하노이 신도시 건설에 나서고 현대건설이 아랍에미리트의 원자력발전소 공사 수주에 큰 몫을 차지했으며 삼성물산은 중국의 주택건설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대형건설사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매니지먼트 능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대규모 건설공사는 이제 고도의 기술과 저가의 인력을 결합해 성과를 내는 소프트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그나마 대형건설사는 중동 플랜트시장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고 치자. 국내 시장에만 매달리는 중소건설사의 앞날은 어둡다. 공공공사 물량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은 없고 구조조정의 칼바람도 갈수록 매서워진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2, 3년간 구조조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부터라도 ‘특화’와 ‘집중’의 화두를 실현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형건설사건, 중소건설사건이 다를 바 없다.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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