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왼쪽)이 ‘토요일의 안단테’ 공연을 펼친 일본의 떠오르는 여성 샛별 지휘자 니시모토 도모미 씨(가운데), 피아니스트 이진상 씨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 설원량문화재단
지난달 6일 오후 8시 전북 무주리조트의 심포니홀. 무대에 오른 재미교포 바이올린 연주자 데이비드 김 씨(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 속에 이토록 수준 높은 공연시설이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더구나 무료 공연이라니요. 전국에서 찾아와주신 여러분을 위해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제8번 다단조 작품번호 110을 연주하겠습니다.”
객석 바로 앞줄 한가운데엔 격조 있는 스커트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인송문화재단 및 설원량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63)이다. 그는 2008년부터 무주리조트에서 2, 3주에 한 번 토요일에 열리는 무료 클래식 공연 ‘토요일의 안단테’를 만들었다. 이날의 공연이 토요일의 안단테였다.
그동안 첼리스트 정명화 등 최정상급 연주자는 물론 첼리스트 송영훈과 피아니스트 손열음 등 주목받는 젊은 연주자들도 이곳을 찾아와 연주를 했다. 오스트리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인 안톤 소로코프와 일본의 여류 지휘자 니시모토 도모미 등도 출연했다.
양 명예회장은 대한전선을 이끌던 남편 설원량 회장이 2004년 뇌출혈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회사를 떠맡았다. 한국 신발 수출 신화인 국제그룹 양태진 창업주의 막내딸로 서울대 음대(피아노 전공)를 나와 35년간 주부로 살던 그는 ‘감성 경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5년 남편의 이름을 따 ‘설원량문화재단’을 세웠다.
“유치원에 다닐 적 ‘야마하 그랜드 G5’모델 피아노를 갖게 됐는데, 당시 경남과 부산 지역에서 가장 좋은 피아노였대요. 고등학생 때 서울대음대 교수에게 레슨을 받느라 부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생각했어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소외돼 있다고요. 문화 소비의 나눔을 좋은 공연으로 실천하고 싶습니다.”
그는 2008년 무주리조트에 미국 카네기홀이 갖춘 ‘메이어’ 음향시설과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피아노 두 대를 들여 놓은 공연홀을 지었다. 그 덕분에 1990년 쌍방울이 지었다가 2002년 대한전선이 인수한 무주리조트는 ‘문화 리조트’로 거듭났다. ‘아트 투어’란 이름으로 전국 음대생들을 초청해 공연을 보게 한 후 무주리조트에서 무료로 숙박도 시켜준다. 최원희 설원량문화재단 팀장은 “지금까지 59차례 열린 토요일의 안단테는 매회 500여 명(지난해엔 총관객 7000명)이 찾아오는 지역의 대표 공연이 됐다”며 “해외 유명 음악가들이 찾아와 이 공연을 대자연 속 음악회인 독일 발트뷔네 콘서트에 빗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해 ‘토요일의 안단테’는 11일 파리나무십자가합창단이 출연하는 ‘2010 송년음악회’로 막을 내린다. 내년에도 지방관객들을 위해 16차례의 고품격 ‘공짜 음악회’가 무주 산골 마을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한전선은 금융위기 이후 부단히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 명예회장은 “음악이 갖는 긍정의 에너지를 기업 경영에 접목하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