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 한 아우가 없다지만 기아자동차 K5엔 이런 통념이 통하지 않는다. 그동안 10년 넘게 국내 중형 세단의 강자로 군림해 온 현대자동차 쏘나타를 제쳤기 때문이다. 5월 24일 시장에 나온 중형 세단 K5는 출고 전 사전 계약물량만 6000여 대에 이르는 등 출발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급기야 6월과 7월엔 두 달 연속 판매량이 1만 대를 넘었다. 비록 석 달간(6∼8월)이긴 하지만 ‘국민차’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쏘나타(신형 YF쏘나타 기준)까지 제압하는 기염을 토했다.
K5는 기아차가 2005년 11월 로체 출시 이후 4년 5개월 만에 선보인 풀 체인지 차량이다. 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총 4000억 원. 기아차 최초의 준대형차로 작년 11월 24일 첫선을 보인 K7의 뒤를 잇는 두 번째 ‘K시리즈’ 신차이기도 하다.
K시리즈는 정의선 부회장이 디자인 경영을 위해 2006년 영입한 아우디·폴크스바겐 수석 디자이너 출신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CDO)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첫 작품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기아차에 ‘패밀리 룩(family look)’을 도입하고 ‘직선의 단순함(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입히며 지금까지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제품 콘셉트 개발부터 양산에 이르는 자동차 생산 전 과정에 슈라이어의 손길이 거쳐 간 차는 K시리즈가 처음이다. 한마디로 K시리즈는 2006년 이후 기아차가 추진해 온 디자인 경영이 처음으로 내놓은 ‘적자(嫡子)’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일까. 이번 DBR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K5는 제품 디자인 및 패키지 차별화 관련 항목에서 다른 후보군에 압도적인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K5의 인기 비결은 역동적인 스포츠 세단을 보는 것처럼 젊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에 있다. 브랜드 콘셉트인 ‘고성능 스포티 중형 세단’에 걸맞게 전륜 차량이면서도 후륜 구동 쿠페 스타일의 느낌으로 유럽 고급차 분위기와도 닮았다는 평이다.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절제된 디자인으로 유럽 특유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이 살아있다.
하지만 K5의 선전은 단순히 유럽풍 고급 스포츠 세단을 보는 듯한 세련미를 추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K5는 최근 1년 사이 새롭게 나온 경쟁차종인 YF쏘나타(2009년 9월)와 뉴SM5(2010년 1월)라는 양 극단에서 절묘한 절충점을 찾아냈다.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난하지도 않은 최적의 디자인 조합을 이끌어냈다는 공통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약 1년 전만 해도 국내 중형 세단은 차종 간 디자인 측면에서 특별한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그러다 YF쏘나타가 지난해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출시 후 몇 달간 1만 대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너무 튄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후 나온 뉴SM5는 예전의 무난한 디자인을 고수했다. 예전보다 더 보수적이고 중후해졌다는 평까지 나왔을 정도다. 중형차 신차 중 마지막으로 세상에 나온 K5는 바로 YF쏘나타와 뉴SM5라는 혁신과 보수의 양 극단 중간 지점에 절묘하게 자리매김했다.
박찬원 로이스컨설팅 대표는 이와 관련해 “소비자들은 너무 진부해도 별 감흥을 못 느끼지만 너무 파격적이어도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며 “K5는 제품의 참신성(novelty) 측면에서 최적점(optimal point)을 찾아내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즉 뉴SM5는 참신함이 너무 약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데 한계를 노출했고 YF쏘나타는 참신성이 너무 지나쳐 만족감이 떨어졌지만, K5는 최적의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에게서 최대한의 긍정적 감정을 유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K5는 표가 나지 않게 튀고 싶어하는 한국인들의 이중적 심리를 잘 간파하고 30, 40대를 공략하며 큰 인기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박찬원 로이스컨설팅 대표 park@loyce.co.kr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1호(2010년 12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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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제안이 확실히 실패하는 원인은?
▼ 제안 성공 노하우
드라마 ‘역전의 여왕’에서 사내 부부인 황태희(김남주 분)와 봉준수(정준호 분)는 신상품 기획안을 두고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나선다. 태희는 어수룩한 남편 준수를 격려하며 프레젠테이션의 필살기를 소개한다.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중요한 데이터는 암기하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 하지만 이는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다. 게다가 사외 입찰에서 경쟁사와 맞붙는다면 고려해야 할 게 한 둘이 아니다. 제안·입찰 전문가들은 이기는 제안과 실패하는 제안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실패하는 제안서에는 일관된 특징이 있다. 제안의 충실도와 반응도가 낮거나 고객 관점이 빠져 있다. 전략도 불명확하다. 제안서가 짜임새 있게 구조화되지 않고 과거의 실적 및 성과와 프로젝트 과제를 연결하는 고리도 약하다. 이런 제안은 백전백패일 뿐이다. 제안에서 확실히 실패하는 10가지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2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호에는 5가지 원인에 대한 분석을 실었다.
숨겨진 인재의 마음에 신바람을 일으켜라
▼ 메디치 가문의 창조경영 리더십
보티첼리의 그림 ‘프리마베라’의 가장 오른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나온다. 그림 속 제피로스는 입술을 모아 힘껏 바람을 불고 있다. 왼쪽에서는 교역, 거래, 상업의 신이었던 메르쿠리우스가 바람의 구름을 휘젓고 있다. 보티첼리는 이탈리아 피렌체 경제를 주름잡았던 메디치 가문 사람들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작품 속 메르쿠리우스의 모습을 통해 메디치 가문이 감당해야 할 리더의 역할과 임무를 은밀한 코드로 집어넣었다. 그 역할이란 바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로렌초 데 메디치는 소년 미켈란젤로의 마음에 거센 바람을 일으켰고, 소년의 마음에 불었던 그 바람은 거대한 태풍으로 변했다. 르네상스 예술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극상(極上)의 아름다움으로 발전했다. 돈이나 승진을 미끼로 인재들의 마음을 사려는 것은 부질없거니와 가능하지도 않다. 소년 미켈란젤로와 같은 숨은 인재의 마음에 신바람을 불러일으킨 메디치 가문 리더십의 요체를 짚었다.
리더십 스타일보다 부하와의 궁합이 성과 좌우
▼ Knowledge at Wharton
늘 강하고 외향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리더가 적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의견을 내고, 명령을 내리고, 계획을 세우며, 그룹 내에서 가장 지배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인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애덤 그랜트 교수가 최근 진행한 리더십 및 그룹 역학 관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통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내성적인 리더가 외향적인 리더보다 효과적일 때도 있다. 리더가 관리하는 대상이 어떤 유형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공한 리더 중에는 대담하고 말이 많고 자기주장이 강한 잭 웰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등과 같은 외향적인 리더가 있는가 하면 마하트마 간디,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조용하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리더도 있다. 리더십에 대한 일반의 통념을 뒤집는 그랜트 교수의 통찰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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