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작고한 리영희 씨가 생전에 펴낸 책들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봤다. 그의 분석과 전망,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상도 오늘의 눈으로 보면 허점이 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지식인의 숙명이다. 그렇지만 외눈박이 물고기로만 살도록 강요받던 세상에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그의 간절한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제 우리도 진보정권 10년, 보수 재집권 3년을 맞이하면서 좌우의 날개로 날게 됐다. 하지만 한국이 지난 13년간 미래를 향해 힘차게 비행해왔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좌우의 날개로 날기만 하면 한국사회의 도약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왜 우리는 자꾸 뒤로 나는 느낌이 드는 걸까. 민주주의의 내용적 발전이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광우병 시위’에서 보듯 반대 진영이 선거로 교체된 정권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아직 공존의 지혜를 터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좌파와 우파 모두 시대변화에 맞춰 각자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실패했다는 원인을 추가하고 싶다. 한국의 두 날개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서구인들이 500년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시행착오 끝에 다듬어낸 역사적인 산물이다. 한국의 좌·우파는 이를 그대로 들여와 판매한 수입상에 가깝다. 가장 최근에 수입한 소프트웨어는 우파가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신자유주의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30여 년 전 현실에 접목시킨 이 소프트웨어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폐기 처분되고 있다.
수입한 소프트웨어가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은 최근 생겨난 난기류들, 즉 ‘노동의 종말’로 표현될 정도로 고용 없는 성장을 가져온 세계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금융자본, 승자가 모든 것을 싹쓸이해 가는 지식자본주의, 서구 패권의 몰락과 중국의 부활에 대한 대처법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 역시 이런 혁명적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허둥대고 있다.
지적 특허를 가진 서구가 이런 상황이어서 그런지 요즘 한국의 좌와 우는 수입도 포기하고 2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서 모두 포퓰리즘으로 달려가고 있다. 새로운 비전이 없는 양측의 리더들은 국민에게 과감하게 변화와 희생을 요구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10일자 신문에서 ‘9가지 위험징후, 한국경제 일본 닮아간다’라는 제목으로 경제전문가들의 우려를 전했다. 일본 전문가 6인은 저출산 고령화, 비정규직 증가, 낮아지는 잠재성장률, 혁신의 실패 등 한국과 일본이 9가지를 닮았으며 이 9가지 모두 일본의 20년 침체를 가져온 원인이라고 경고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9731달러인 부자 일본은 장기간의 침체를 견딜 수 있지만 한국(1만7074달러)은 사정이 다르다. 소득 3만 달러가 넘기 전에 일본의 전철을 밟으면 한국은 선진국 진입이 어렵고 북한의 붕괴까지 겹치면 역사의 시계가 어디까지 되돌아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경제전문가들은 해답으로 ‘창의성’을 주문하고 있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창의성을 우선하도록 바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 분야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결국 정치권이 리드해야 한다. 한국의 좌와 우는 차기 대선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 시대정신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은 미래로 날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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