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투자 세계 2위인데 성장률 부진… 스톡홀름 현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7일 03시 00분


‘스웨덴 패러독스’ 끊기 고심… ‘선택과 집중’으로 투자 조정

‘스웨덴 패러독스(Swedish Paradox)’라는 말이 있다. 과학기술 강국인 스웨덴에서 막상 연구개발(R&D) 투자만큼의 생산성이 나오지 않아 경제성장이 뒤처지는 모순을 뜻한다. 다이너마이트와 몽키스패너, 볼베어링, 테트라팩 등 많은 과학 발명품을 탄생시킨 ‘노벨상의 나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비아냥거림이다.

스웨덴은 요즘 이 패러독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기초과학 연구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응용과학 및 기술 상업화를 진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놓고 다양한 전략을 시도 중이다. 노벨상 시상식(10일)을 전후로 일주일간의 ‘노벨 위크(Nobel Week)’에 찾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 미래 수요에 철저하게 맞춰진 기술

스톡홀름의 과학클러스터 단지 ‘시스타(Kista)’에 자리 잡은 에릭손 본사. 입구에 들어서자 ‘말하는 나무’가 기자를 맞았다. 잎을 살짝 만지니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두 팔로 안아주자 “기분이 좋네요” 등의 감정도 표현했다. 화분 밑에 감춰진 센서가 나무의 움직임과 강도를 인지하고 이를 주변 오디오에 무선으로 연결해 주는 기술을 적용한 결과다. 주변에는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적용한 단말기와 의료기기, 자동차 등 여러 제품을 시연해 볼 수 있는 각종 코너도 있었다. 울프 월베르그 R&D 담당 부사장은 “성장세가 더 가파르게 치솟을 정보통신 분야에 미래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스웨덴 패러독스’에 맞서는 핵심 원칙은 높은 수익성이 예상되는 기술에 R&D 역량을 집중하는 것. 에릭손의 경우 연간 매출액의 16%(약 30만 유로)에 이르는 R&D 투자의 상당 부분을 하드웨어가 아닌 정보통신 기술과 서비스 연구에 배분하고 있다. 특히 차세대 이동통신망 ‘LTE’ 시장 선점을 목표로 10년 이상의 장기 목표를 수립했다. 보에리크 달스트롬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고객의 수요와 눈높이에 맞춘 기술이 수익으로 이어진다”며 “소비자연구소(Consumer Lab)를 운영하며 기술개발에 앞서 소비자의 요구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또 다른 대표적 R&D 기업으로 손꼽히는 군수업체 사브도 시장의 수요에 맞춘 기술 및 제품 개발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해외 고객을 끌어와 수출을 늘릴 수 있는 기술개발을 위해 대학 연구소들과의 협력도 강화했다. 나라마다 다른 국방 시스템에 쉽게 조정, 적용이 가능한 모듈화 작업을 통해 수출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렸다. 폰투스 데 라발 최고기술경영자(CTO)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어리석은 접근”이라며 “미래 수요를 파악해 아주 구체적으로 산학협동 전략을 짠 뒤 그 기술과 제품 개발에 강도 높게 집중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성장 없는 R&D는 잊어라”

스웨덴 정부는 2008년 ‘성장분석연구소’를 신설해 R&D를 포함한 각종 투자의 효율성과 결과를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연구소의 엔리코 디아코 국장은 “R&D 규모와 국내총생산(GDP)만 놓고 봤을 때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분석 결과를 얻었다”며 “경제성장에는 다른 여러 요소가 두루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스웨덴 기술혁신청(VINNOVA)도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금을 집행하고 있다. 기술혁신청이 지원하는 과학기술 연구 프로젝트는 연간 1500여 개. 예란 마크란드 기술혁신청 전략개발 담당 대표는 “정부 R&D 자금의 50% 이상은 여전히 기초과학에 들어가지만 우리는 비즈니스 임팩트가 있는 기술 연구, 산업적 잠재력이 큰 부분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의약과 제약 등 바이오 기술에 투자가 집중되는 추세다.

스톡홀름=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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