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의 사나이, 벤처신화 등의 별명이 붙은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가 프로야구단 운영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는 “세상 사람들을 더 즐겁게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사진 제공 엔씨소프트
‘1조 원의 사나이, 주식부자 12위, 벤처신화, 자수성가 최고경영자(CEO)….’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43)를 칭하는 단어들이다. 앞으로 하나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프로야구 구단주’다. 엔씨소프트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경남 통합창원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제9구단을 창단할 뜻을 담은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게임업계에서는 “역시 김택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또 한번 상상도 못한 영역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22일 발표 직후 주가가 21만2000원에서 19만8000원으로 6.6%나 떨어졌다. 현재 프로야구 구단 중에 흑자를 내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야구팬들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김 대표의 야구단은 뭔가 다를 거라며 벌써부터 ‘치어리더가 게임 캐릭터 옷을 입지 않을까’란 농담까지 나왔다. 이 모든 반응에 김 대표는 “세상 사람들을 더 즐겁게 만든다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일축했다.
○ 자수성가 CEO의 즐거운 꿈
왜 야구단일까. 김 대표는 ‘관계’와 ‘꿈’을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관계를 쌓기 위해 게임을 한다”며 “우리는 게임 내에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왔다. 이제 ‘야구’라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확장해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삶의 활력소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회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 자신의 ‘꿈’도 이번 결정에 한몫했다. 하일성 스카이엔터테인먼트 회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 시절 김 대표를 만났던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2007년 10월 김 대표가 당시 매물로 나온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고 싶다며 찾아왔다는 것. 하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왜 인수를 원하느냐고 묻자 ‘야구를 좋아해서 구단주가 되는 게 꿈’이라고 답했던 게 기억난다”며 “당시 STX, KT 등과 협상 중이어서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잠실야구장까지 시간 날 때마다 야구를 보러 간다고 한다. 특별히 응원하는 팀은 없다.
사실 그의 화려한 이력을 한 단어로 말하면 ‘꿈’이다. 꿈을 따라 남과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1989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재학시절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과 함께 ‘한글’을 개발했다. 1997년에는 당시 현대전자를 나와 직원 17명과 온라인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를 만들었다. ‘리니지’ ‘아이온’으로 연달아 대박을 터뜨려 올해 매출액 7000억 원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22일 기준 재벌닷컴의 국내 상장사 주식지분가치 조사에서 김 대표의 소유지분 가치는 전체 12위에 해당되는 1조1461억 원에 달한다. 재벌 2, 3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의 유일한 자수성가 부호다. 2007년 ‘천재소녀’ 윤송이 박사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옳다고 믿으면 ‘철저하게’ 간다
프로야구단은 매년 2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어야 한다. 창단 가입비 100억 원 이상을 내야 하고, 매년 적자폭을 100억 원 이상 감내해야 한다.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매출 6347억 원, 영업이익 2340억 원으로 재무구조가 탄탄하다지만 매년 영업이익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재투자할 수 있을지 시장은 의문의 눈길을 보낸다. 게다가 게임은 이익률이 높지만 그만큼 흥행실패 시 위험요소가 크다. 이에 대해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가 앞으로도 현재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의 꼼꼼한 성격상 단순히 야구가 좋아서 결정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옳다고 믿으면 누가 뭐래도 가지만 철저하게 준비하는 ‘완벽주의’라는 것이다. 아무리 주주들이 빨리 새 게임 서비스를 시작하라고 해도 완벽하지 않으면 몇 년이고 다시 개발한다. 새로 나온 휴대전화는 다 사서 써보고, 책,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까지 섭렵하는 등 새로운 트렌드를 몸소 체험하고 분석한다.
야구단 창단도 회사 내에 TF를 만들고 일본 게임회사 닌텐도가 운영하는 미국 시애틀 매리너스와 일본의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철저히 분석했다고 한다. 엔씨소프트 이재성 상무는 “야구의 주요 관객이 우리 소비자층과 겹치고, 온라인에서 야구와 마케팅할 소재가 무궁무진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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