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에 이르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스큐드(skewed)’라는 개념을 빼놓을 수 없다. 스큐드는 오랫동안 동일한 패턴이 이어지면서 어느 한쪽으로 굳어져 버린 개념, 행동, 현상 등을 의미한다.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스큐드를 보고도 무심코 스쳐 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통찰은 바로 스큐드를 발견하고 이를 수정할 때 발생한다. 휴지통 외벽에 주름을 잡아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컴프레션 휴지통, 손가락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중앙에 구멍을 낸 플러그 등은 모두 우리가 늘 지나치는 스큐드에 변화를 줌으로써 탄생했다. ▶본보 4일자 B3면 일상의 통념 비틀면, 전혀 새로운 통찰이…
통찰에 이르는 스큐드 활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색상의 수정, 형태의 수정, 사이즈의 수정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을 활용하면 스큐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게 한결 용이해진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72호(2011년 1월 1일자)에 실린 스큐드 활용법을 소개한다. ○ 색상의 수정
어느 한쪽으로 굳어져버린 ‘스큐드(skewed)’를 통찰에 활용하려면 색상을 수정하거나 형태를 달리하거나 사이즈에 변화를 주면 된다. 바구니 모양 사옥(위), 컬러 장미(왼쪽 아래), 티컵 강아지는 각각 색상과 형태, 사이즈 스큐드에 변화를 줘 큰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DBR 자료 사진
장미는 원래 빨간색이다. 장미의 빨간색은 열정과 아름다움을 상징해 예부터 남성이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에 많이 사용돼 왔다. 그런데 수백 년간 오직 빨간 장미로만 고백하다 보니 재미가 없고 다소 진부해 보이기도 한다. 그에 따른 감동도 갈수록 약해져 가고 있다.
이것을 고민하던 한 장미 농원주가 장미의 색깔을 변화시켜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장미꽃에 입김을 ‘후’하고 불면 온도차에 따라 장미의 색깔이 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컬러잉크를 활용한 아이디어였다.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이 농원주는 곧 파스텔 장미, 야광 장미, 황금 장미 등 온도와 빛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기능성 장미를 다양하게 내놓았다. 세계 특허까지 획득한 이 상품은 현재 일본, 싱가포르, 러시아 등에서 송이당 3000원 안팎으로 팔리고 있다. 일반 장미보다 4, 5배 비싸지만 주문이 계속 밀리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컬러장미의 성공은 오랫동안 한쪽으로 쏠려 있는 장미 색상의 스큐드를 수정했기에 가능했다. 색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들의 주의를 끌고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온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벽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벽지는 라디에이터의 온도가 올라가면 특정 잉크가 칠해진 부분의 색상이 변한다. 꽃무늬로 변화할 수도 있고, 노란색 가로등으로도 바뀔 수 있고, 주황색 목도리로도 변하게 할 수 있다. 컬러장미처럼 온도 변화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컬러잉크를 활용해 만들어 낸 변화다.
○ 형태의 수정
어떤 대상이든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일정한 형태의 스큐드를 가진다. 컴프레션 휴지통, 구멍이 뚫린 플러그 등은 모두 형태 스큐드의 수정을 통해 통찰을 이끌어 낸 사례다. 형태 스큐드의 수정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예가 미국 수제 바구니 전문업체 롱거버거(Longaberger)의 본사 사옥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 작은 시골 마을인 드레스덴에 위치한 롱거버거 본사는 바구니 모양의 외관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이 회사 사옥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조차 있을 정도다.
롱거버거의 최고경영자(CEO)는 “어떻게 하면 회사의 이름과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회사 사옥을 바구니 모양으로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자. 바구니 모양으로 사옥을 지으면 안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건물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회사 건물에 대한 스큐드 때문이다. 놀라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비틀어질 때다. 그래서 형태의 수정은 쉽고 효과적인 아이디어의 도출 방법이 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우리는 대개 세로로 높게 세워 들고 다니는 형태의 여행용 가방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가방은 무게중심이 높아 좌우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고 가방 높이 때문에 그 위에 소형 가방을 얹고 다니기도 불편하다. 하지만 만약 손잡이를 빼서 꺾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 어떨까. 훨씬 안정적이면서도 편하게 끌고 다닐 수 있는 여행용 가방이 된다. 이것은 절대 결핍의 발견과 스큐드 형태 변화의 합작품이다.
사이즈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스큐드 중 하나다. 큰 것을 작게 만들거나,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건 생각보다 높은 효용을 발휘한다. 먼저 사이즈를 크게 해서 성공한 사례로 ‘위스콘신 2010 스테이트 페어’에서 시판되자마자 모조리 판매된 ‘폭탄 버거’를 꼽을 수 있다. 이 버거는 다이어트를 하는 데 지친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완전한 해방감을 안겨주는 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맛있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이 버거의 열량은 줄잡아 1000Cal 수준이다.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끔은 맛으로 똘똘 뭉쳐진 완벽한 ‘일탈 버거’를 먹고 싶어질 것이라는 데 착안해 다이어트에 역행하는 사이즈로 스큐드를 수정했다.
엄청나게 높은 열량에도 불구하고 이 폭탄 버거는 비단 미국에서만 인기를 끄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전 세계 주요 도시로 이 아이디어가 수입돼 유사한 사이즈의 버거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물론 한국도 최근 이 같은 고열량 버거를 선보였다.
작은 사이즈로의 변경을 시도해 성공한 예로 컵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초미니 사이즈의 강아지를 들 수 있다. 이른바 ‘티컵 강아지’로, 한때 소녀들에게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던 애완견이다. 이 티컵 강아지는 몸집이 작은 부모견을 연속 교배시켜 작은 사이즈의 강아지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작은 강아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게 옳은 일인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고 사이즈의 변경이 사람들에게 어떤 심리적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만을 놓고 따져봤을 때 티컵 강아지의 성공은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결과다. 사이즈에 관련된 스큐드에 변화가 일어나면 소비자는 심리적 격차를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정보처리의 양이 증가하게 되면 선호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경우 소비자가 기대하는 사이즈가 있다. 이것보다 월등히 작은 사이즈의 강아지라면, 그것도 작은 컵에 들어갈 정도의 강아지라면 ‘귀여움’을 좋아하는 소녀들에게 열광적인 사랑을 받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것이 스큐드의 변화로부터 나타나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변화다.
컬러 장미, 롱거버거 본사 사옥, 티컵 강아지 등의 사례에서 보이듯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스큐드에 일정한 형태의 변화를 주면 놀라움이 발생한다. 우리가 우선 주목할 것은 색상과 형태, 사이즈라는 세 가지 요소다. 이 요소에 대한 변화만으로도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분의 비즈니스에 적용해 보기를 바란다.
신병철 WIT 대표 bcshin03@naver.com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2호(2011년 1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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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볼보자동차와 영국의 톰 월킨쇼 레이싱은 1995년 합작회사인 오토노바AB를 설립했다. 장밋빛 기대와는 달리 볼보와 톰 월킨쇼 레이싱은 합작회사 경영과 관련해 자주 갈등을 빚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작회사의 조직 구조도 여러 번 바꿨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모(母)기업 간 갈등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800∼900대의 자동차가 배송되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합작회사의 실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공장도 폐쇄 위기에 놓였다. 결국 1040명의 직원이 해고됐다. 환경 적응을 위한 구조 변화는 기업에 유익하다는 게 통념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국제 합작회사는 잦은 변화가 기존 관행을 파괴하고 관계를 악화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정창화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폴 비미시 캐나다 IVEY 비즈니스 스쿨 교수와 함께 17년간 5053개 국제 합작회사를 대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이번 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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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은 2세 경영인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회사를 맡았다. 김 사장은 ‘카피’를 주력으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이 아닌 창조적인 기업으로 회사를 재편하고 싶었다. 창조적인 직장을 만들려면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아버지 때부터 오랫동안 회사에서 근무했던 임원들이 그런 분위기를 막는 것 같았다. 그는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명문대 출신 대기업 연구소 직원들을 영입했다. 그러자 기존의 연구소 직원들은 그들과 자신을 동급으로 대우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 밑에서 오래전부터 일했던 임원 두 명도 회사를 나갔다.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막상 그들이 나가자 일이 돌아가지 않았다. 비싼 몸값에 영입한 직원들은 “단순한 일을 하려고 온 게 아니다”라며 기존 직원들이 하던 일을 맡지 않겠다고 버텼다. 여러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업성이 급격히 나빠진 회사는 결국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창조 경영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했던 김 사장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천편일률적인 창조혁신 전략의 위험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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