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국내 와인 관련 회사, 호텔, 식당, 와인바의 대표나 마케팅 담당, 와인 동호회 운영진 등 30여 명에게 ‘올해 국내 와인시장의 주목할 만한 변화(이슈)’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답변이다.
실제로 2, 3년 전만 하더라도 동일한 와인을 대형마트와 백화점, 와인전문점에서 모두 구입할 수 있었지만 근래 들어서는 판매처에 따른 와인의 구색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마트에서 잘 팔리는 와인 가격은 비싸봤자 3만 원을 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올해 상반기부터 유명 백화점 및 와인전문점에서는 이미 평균 구매액이 5만 원대를 넘으면서 격차가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의 경우 계열사가 수입하는 와인 비중을 계속 높여가며 수요가 많은 저가 와인시장 지키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와인전문점들은 가격이 높고 판매할 수 있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아도 오직 자신들만 팔 수 있는 아이템 마련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수입사들의 행보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존에는 많은 수입사가 저가부터 고가까지 두루 와인을 다루었다면, 이제는 어느 한쪽을 택해 집중하는 작업에 들어간 곳이 여러 군데라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 국내 대기업 계열의 와인 회사 두 곳은 자신들이 취급하던 전문성 높은 다양한 와인을 대대적으로 털어내며 자신들의 행보를 간접적으로 알렸는가 하면, 퍼플퀸, 비노쿠스 같은 소규모 수입업체들은 올해 현지 생산량이 얼마 안돼 수입에 어려움이 많았던 가치 높은 와인 수입을 계속해서 성사시키며 고급 와인시장에서 입지를 완전히 굳혔다.
두 번째로 많았던 답변은 4월과 12월 각각 유럽연합(EU), 미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관세 철폐’였다. FTA가 내년부터 당장 발효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스페인, 이탈리아 와인의 수혜가 크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스페인 와인의 수입량은 올해 상반기에 이미 칠레를 제치고 1위에 올랐고 이탈리아 와인은 프랑스 와인의 아성을 위협할 유일한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다.
‘와인 할인행사가 너무 잦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와인시장 개편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일 수도 있고 경기 침체의 여파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잦은 와인 할인행사로 인해 권장소비자가격이 유명무실화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칫 앞으로는 소비자들이 할인행사가 아니면 와인을 구매하지 않는 현상이 고착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이 밖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성화와 스마트폰 보급 확대로 인한 시장과 소비자 양측의 여러 변화들, 월드컵 덕분에 국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이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던 점, 모에 샹동, 돔 페리뇽을 취급했던 모에 헤네시의 갑작스러운 국내 철수 등을 올해의 업계 이슈로 꼽은 이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올해는 음식과 와인에 관한 좋은 책이 여러 권 출판됐다는 점이다. 특히 ‘이탈리아 와인 가이드’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 ‘와인력’ 등은 두고두고 읽을 만큼 가치를 충분히 느끼게 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 주의 와인 체르바로 델라 살라, 안티노리
현재 안티노리사의 사장을 맡고 있는 렌조 코타렐라가 입사한 후 처음(1987년이 첫 빈티지)으로 만든 와인이다. 움브리아의 샤르도네와 지역 토착 품종을 블렌딩했다. 이탈리아에서 레스토랑 관계자들이 ‘20세기를 빛낸 10개의 이탈리아 와인’을 뽑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위대한 부르고뉴 화이트와인과도 대결해 볼 만하다. 여간해서는 가격 대비 맛좋은 와인의 자리를 뺏기지 않을 것이다. 1년에 120병밖에 수입되지 않는다는 점은 안타깝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