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기업이나 조직에서는 이미 내년도 계획 수립을 마쳤을 때다. 변화무쌍한 신년도 전망에 따라 새로운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하거나, 해마다 하는 대로 적당히 목표와 실행계획을 짠 곳도 있을 것이다. 이제 계획대로 실행하는 일만 남았지만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새해 여건이 달라지면 수정계획을 세우는 게 보통이다.
수정하더라도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현실 세계는 생각보다 시스템이 훨씬 복잡해 계획만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뿐더러 잘못하면 실패와 위기를 초래하기 쉽다. 오랫동안 기업을 상대로 컨설팅을 해온 저자는 직접적인 계획이 도리어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되는 현상을 목격했다. 목표만을 바라보는 직접적인 방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동기다.
저자는 고백한다. “고객들이 의사 결정에 우리 모델을 사용하지 않았다. 고객들은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할 수단으로만 우리의 모델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고객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객들이 어리석은 게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 단순히 목표만을 추구하는 직접적인 공략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객들은 이미 알고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이런 사례가 무수히 많다. 주주 가치를 외치던 샌디 웨일은 씨티그룹의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쫓겨났고, 수익에 집착한 보잉의 최고경영자 필립 콘딧은 경영에 실패했다. 반대로 월마트의 창립자 샘 월턴, 빌 게이츠, 앤드루 카네기 같은 부호들은 탐욕스럽지 않고 물질만을 좇지도 않았다.
저자는 이 경험을 좀 더 일반화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것을 직접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비즈니스는 물론 전쟁 철학 예술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 적용한다. 예컨대 산불 대책으로 완전 진화에서 선택적 진화라는 우회적 방식을 선택한 미국 국립공원관리공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마지노선을 무너뜨린 독일의 작전이 우회전략의 가치를 입증한다.
이 책은 계획 신봉자들을 비판한다. 현실 세계의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철저한 계획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경제학자들이나 잘못된 전쟁을 일으킨 정치인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금융가와 수익과 주주가치만을 추구하다가 회사를 망친 경영자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계획 신봉자인 데다가 직접적으로 목표를 공략하는 스타일의 리더라면 이 책을 찬찬히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리더가 목표 달성만을 강조하고 채찍을 휘두른다면 조직 구성원들은 오로지 목표만을 보고 달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고가 터지고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유럽의 경영학 교수이자 컨설팅회사 대표인 저자에게서 동양적인 사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박영균 기자 parkyk@donga.com
■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역사를 통해 살펴본 ‘시장의 힘과 한계’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윌리엄 밀버그 지음 608쪽·2만 원·미지북스
시장의 탄생에서부터 신자유주의까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돌아본 책. 역사적으로 인류가 생산과 분배를 해결하는 방식은 전통, 명령 혹은 시장에 의해 운영되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였다. 전통에 의한 방식은 아주 먼 옛날 발명돼 관습과 신앙이라는 힘으로 유지돼온 절차에 따라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권위적인 명령이 통했던 예로는 이집트와 중국의 거대한 고대 건축물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에서도 명령의 방식은 ‘조세’라는 완곡한 방식으로 살아있다.
마지막으로 시장의 방식은 사회로 하여금 전통이나 명령에는 최소한으로 의지하면서 스스로의 필요를 조달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시장조차 완벽하지 않고 많은 문제를 낳는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신자유주의, 세계 빈곤, 정보 기반 사회 등 세 가지 이슈와 연관을 짓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정보기반사회는 현대경제사회의 핵심적 특징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정보사회 개척해 온 ‘IT 위인’ 이야기 정지훈 지음 492쪽·1만6000원·메디치
1971년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화선에 접속해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전화를 거는 ‘블루박스’라는 장치를 만들었다. 사업성을 간파한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부탁해 이를 더 만들게 한 뒤 완성된 박스를 대학생들에게 150달러씩에 판매했다.
잡스는 2006년 구글의 에릭 슈미트를 집에 초대했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미래를 함께 의논했다. 애플과 구글의 밀월관계가 시작된 것. 하지만 2007년 11월 구글은 삼성, 인텔, 이베이 등을 포함한 33개의 회사와 협력해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안드로이드는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는 운영체제다. 아이폰을 내세우던 잡스는 경쟁업체들과 손잡은 구글에 배신감을 느꼈고, 애플과 구글의 ‘로맨스’는 막을 내렸다.
미래학자인 저자가 블로그에 연재한 글을 엮었다. 잡스, 빌 게이츠 같은 거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인물들의 재미있는 일화도 여럿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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