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의 ‘통큰 치킨’ 사태 이후 정치권의 친서민 기조와 소비자 권리가 충돌하는 양상을 띠면서 정부 안팎에서는 “대기업슈퍼마켓(SSM) 규제를 둘러싼 논쟁 때 소비자후생 문제를 너무 등한시했던 것 아니냐”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국회는 지난달 재래시장과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한 강력한 SSM 규제법안인 ‘유통산업발전법안(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안(상생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들의 심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와 통상교섭본부 등은 “두 법안은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유럽연합(EU) FTA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여야 정치권의 영세상인 보호 명분에 결국 밀렸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27일 “통큰 치킨 사태를 보면서 소비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졌음을 깨닫게 됐다”며 “SSM이 영세 상인의 이익을 침범하지만 반대로 서민 소비자에게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음을 강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치권 등에 제출한 비공식 가격 비교 자료에 따르면 동네슈퍼나 편의점의 일부 생활필수품 가격은 SSM의 2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광화문 일대의 SSM은 생수 1병(0.5L)을 350원에 팔지만 동네슈퍼는 600원, 편의점은 750원에 판매했다. 편의점 생수가 SSM보다 114.3%나 비싼 것이다. 맥주(1캔)도 SSM은 1250원이지만 편의점 1750원, 동네슈퍼 1800원이었다. 1회용커피(20개)도 SSM 2570원, 동네슈퍼 3500원, 구멍가게 4000원, 편의점 4200원으로 가격차가 컸다.
한편 상생법은 대기업의 투자지분이 51% 이상인 SSM 가맹점도 SSM 직영점과 마찬가지로 사업조정신청 대상에 포함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SSM 인근 영세 떡집이 해당 SSM에서는 떡을 팔지 못하도록 중소기업중앙회에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떡집의 권익은 보호되지만 값싼 떡을 사먹을 수 있는 서민 소비자의 권리는 무시되는 측면이 있다.
경제부처 관계자들은 “정치권은 침묵하는 대다수의 소비자보다 직접 피해를 보는 특정한 소수의 강한 목소리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통큰 치킨, SSM 문제를 통해 확인된 친서민 기조와 소비자 권리의 충돌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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