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일본에는 2등국 원년이다.’ 중국 언론은 지난해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경제 2위국으로 올라서 중-일 간 경제 패권 경쟁이 일단락됐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또 홍콩의 친중국 ‘원후이(文匯)보’는 1일자 신년호에서 “중국은 건국 이후 세계 질서를 따라가는 수동적인 ‘추종자’에서 개혁 개방 이후 ‘참여자’로 바뀌었으며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결정자’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가 세계 경제와 정치 안보 질서를 뒤흔드는 변화의 진원지로 부상하고 있다. 태풍의 핵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인도의 급속한 부상, 군사 안보에서는 미중 간의 경쟁을 축으로 아시아 각국 간 영토 갈등과 중국의 부상에 따른 주변국의 견제와 갈등이다. 역동적인 아시아의 부상으로 서세동점(西勢東漸)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고 있다.
○ 경제 패권 경쟁의 무대가 된 아시아
지난해 8월 16일 일본 내각부가 2분기(4∼6월) 국내총생산(GDP)을 발표하자 일본 열도는 ‘올 것이 왔다’며 충격에 빠졌다. 2분기 명목 GDP가 1조2883억 달러로 중국(1조3369억 달러)보다 486억 달러 뒤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은 오래전부터 나왔으나 막상 현실화하자 불과 5년 전까지도 일본의 절반에 불과했던 중국 경제의 급성장이 다시 주목을 끌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0년 중국의 GDP는 5조7451억 달러로 일본의 5조3908억 달러보다 조금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제 세계의 이목은 중국이 미국을 언제 추월할지에 모아지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2030년을 분기점으로 잡았다. 2010년 미국과 중국의 GDP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3.6%와 9.3%로 추정되지만 2030년에는 중국 23.9%, 미국 17.0%로 역전되리라는 것.
마오쩌둥(毛澤東)은 1950년대 사회주의 혁명 성공의 자신감에 차 있을 때 “동풍이 서풍을 제압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중국의 급부상은 개혁개방과 함께 올해 가입 10년을 맞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세계화 그리고 ‘적색 자본주의’의 과감한 도입으로 가능했다.
아시아 경제 지형을 바꿀 또 다른 복병은 인도다. 지난해 GDP는 약 1조4300억 달러로 세계 전체에서의 비중은 2.3%로 낮다. 하지만 인구 10억을 돌파한 인도는 정보기술(IT) 산업은 물론이고 철강과 자동차 등 전통산업까지 일본과 중국을 추격하고 있다. ○ 영토 갈등과 지역 맹주 다툼
지난해 9월 중국과 일본 간에 불거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해상에서의 중국 어선 선장 구속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해묵은 영토 갈등이 재연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일본 해양 순시선을 들이받은 어선 선장 한 명을 구속한 사안을 두고 희토류 수출 제한까지 들고 나오며 반발한 것은 중국이 아시아에서 맹주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을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베이징(北京)의 외교 소식통들은 분석한다.
중국은 14개 접경 국가 중 육지는 인도와만 국경 갈등이 남아 있다. 중국은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프라데시 주의 다왕 지역 약 9만 km²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반면 인도는 잠무카슈미르의 아크사이친 3만8000km²를 중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양측 간 기 싸움은 ‘미래 전략적 경쟁국’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난사(南沙·영어명 스프래틀리) 군도와 시사(西沙·파라셀) 군도 등의 영유권을 놓고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중국의 행정지도선인 중국 ‘위정(漁政) 311호’에 맞서 말레이시아의 항공기가 출동하기도 했다.
○ 아시아의 중국 견제 움직임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지난해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하는 등 경제협력을 강화하며 점차 ‘위안화 경제권’으로 빨려들고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 영토 갈등 등으로 아시아에서는 ‘중국 견제 공동전선’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도 ‘아시아 개입’ 정책을 표방하며 아시아 국가들의 대(對)중국 공동전선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아시아태평양 7개국을 순방했다.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거의 겹치는 시기에 아시아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일본, 인도, 아세안 국가와의 연대를 통해 대중(對中) 견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베트남은 미국과 공동 군사훈련을 벌이는가 하면 남부 캄란 만(灣) 해군기지를 미국 러시아 등 외국 군대에 개방키로 했다. 러시아 일본과 대규모 원전건설 협약을 맺은 것도 중국 견제를 위한 것이다.
과거 냉전시대 유럽에서 미국과 옛 소련이 패권 경쟁을 벌였듯 이제는 아시아가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의 중심 무대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해군 핵잠수함이 지난해 2월 일본 규슈와 대만, 필리핀을 잇는 제1 열도선을 탐지되지 않고 돌파한 것은 전략 균형상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1 열도선은 냉전 당시 미국 등 서방이 옛 소련과 중국 북한 등을 봉쇄하기 위해 설정한 해양 감시선이다. 중국 잠수함의 제1 열도선 돌파는 ‘대양 해군’을 통해 세계 패권으로 나아가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보여줬다.
또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에 대응해 한미 양국이 벌인 연합훈련에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이 참가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반대한 것은 이 같은 사건을 빌미로 미국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강화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의 힘이 커 나갈수록 미국과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아시아지역의 패권다툼은 한층 복잡해지고 긴장감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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