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돈 KGB물류그룹 회장(52)은 ‘이사의 달인’이라 불린다. 30여 년 전 직접 이삿짐을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 한 해 매출 2000억 원의 물류그룹으로 키워냈다. 업계에서는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이사 일을 천한 직업으로 생각하던 시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천직이라 여겨 뛰어들었다”는 박 회장은 “보석 같은 직업”이라고 했다.
“우리는 고객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압니다. 어떤 취향인지,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는 물론이고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언제 바꿔야 할지도 한눈에 파악하죠. 고객의 소비패턴을 이렇게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업종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입니다.” ○ 아파트 건축 붐에 맞춰 이사업 도전
박 회장은 10대부터 이삿짐을 들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 냈어요. 그래도 최고가 되고 싶었죠. 14세에 경남 밀양에서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어릴 때 읽은 책에 주인공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다니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걸 따라해 본 셈이죠.”
그는 식당에서도 일하고, 정비소에서도 일하고, 주택공사에서 사환으로도 일했다. 기술훈련원을 다니며 기술도 배웠다. 낮에 일하고, 밤에는 검정고시학원을 다녔다. 주말에는 이삿짐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이삿짐센터에는 이도저도 안 돼 떠돌던 인부들이 모였어요. 신용도 확실하지 않고, 거친 사람들. 당시 신문에 이삿짐센터를 성토하는 기사가 많았어요. 이삿짐이 망가지는 건 다반사고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할 일이 있겠구나 싶었죠.”
그는 아예 잠실의 한 이삿짐센터로 취업을 했다. 1978년 무렵이었다. “내가 주택공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잖아요. 이사 물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겠다 예상했지요.” 마침 강남에 아파트 건축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 상위시대’ 얘기가 나온 게 그때부터였어요. 앞으로 여자들 일손을 덜어주는 일을 하면 성공하겠구나. 이사 업종이 ‘딱’이었습니다.”
○ 포장이사 첫 도입으로 새바람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24세에 ‘이사공사’란 이름의 이사 전문업체를 세웠다. “어렸을 때 이사 풍경을 생각해 보세요. 온 친척이 모여서 짐 싸고 리어카 끌어가며 옮겼잖아요. 그런데 핵가족화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사를 가족끼리 할 수가 없게 됐어요.” 당장 냉장고만 해도 200L짜리가 300L, 500L 이상으로 늘었다. 가구도, 가전제품도 무거워져 전문업체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박 회장은 당시 차별화된 이사 전문업체를 시도했다. 인부들에게 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히고 친절을 가르쳤다. 그리고 소비자에게 편지를 동봉했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당 직원의 유니폼 번호만 기억했다가 회사 쪽으로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서비스라는 개념조차 없던 이사업종에서 획기적인 시도였다.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 1980년대 후반 ‘고려통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이사를 도입했다. 국내 최초였다. “당시만 해도 이삿짐을 싸는 건 소비자 몫이었어요. 포장도 엉성했고,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고 옮기다 보니 사고가 잦았어요. 그래서 전문가가 파손방지용 박스로 포장해 옮기는 ‘포장이사’를 도입했습니다.”
용달차 대신 ‘탑차’(뚜껑 있는 화물차)를 도입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이삿짐을 짐짝이 아닌 골동품처럼 다룬다는 취지였다. 날개차, 사다리차 역시 처음 도입해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 이사설계 전문화로 제2의 도약 시도
이사업계에 포장이사 시스템이 도입되고 고급화되면서 대기업도 손을 댔다. 출혈경쟁이 시작된 것. 브랜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박 회장은 새 이름 ‘KGB(고려골든박스)’로 브랜드 보급에 나섰다.
또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방으로 대리점 시스템과 ‘소(小)사장제’를 도입했다. 탑차 소유주 한 명 한 명을 사장으로 독립시켜 서비스 경쟁을 시킨 것. 소사장으로서 능력을 키워 규모를 확대하면 대리점을 운영하도록 했다. 가격 대신 서비스로 승부수를 둬 대기업과의 경쟁 속에서도 20% 이상의 점유율로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사를 잘하는 회사가 택배도 잘한다”며 택배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박 회장은 “대기업들이 택배 시장을 황폐화시켰는데 이를 바로잡는 게 목표”라고 했다. “운송노동자가 택배 한 건으로 받는 돈은 600원입니다. 대기업에서 가격 덤핑을 한 탓이지요.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를 벌려면 하루에 200개는 배달해야 합니다. 소비자에게 친절하게 두 손으로 물건을 전달하는 건 기대할 수 없는 거죠.” 그는 “소비자와 접점에 있는 운송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대우조차 안 하면서 서비스를 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M플랜’이라는 브랜드도 준비하고 있다. “이사 설계를 전문화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설계해 보겠다”며 “지금까지 그랬듯 계속 새로운 서비스를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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