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전세대책’ 도시형생활주택-오피스텔 둘러본 주부들 불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5일 03시 00분


“23㎡ 원룸서 3, 4명 살라니 기가 막혀”

▲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도시형생활주택 내부. 전용면적 23㎡에 냉장고, 에어컨 등을 붙박이로 갖춘 이 주택은 1명이 살기에는 편리해도 3명 이상 가족이 지내기에는 비좁아 보였다.
▲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도시형생활주택 내부. 전용면적 23㎡에 냉장고, 에어컨 등을 붙박이로 갖춘 이 주택은 1명이 살기에는 편리해도 3명 이상 가족이 지내기에는 비좁아 보였다.
《 “어머, 실내 공간이 생각보다 너무 작아요. 같은 면적인데도 아파트와 비교해 보니 절반 크기네요. 아이들 책상은커녕 빨래 널 곳도 없네요.” 최근 전셋집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L오피스텔을 찾은 주부 정모 씨(39)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정 씨는 지금 사는 아파트 전세금이 1억 원 이상 뛰자 조금이라도 싼 인근 아파트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전셋집은 나오기가 무섭게 동이 났다. 조급한 마음에 “오피스텔이라도 한번 들러 보겠다”고 나섰지만 오피스텔의 전용면적이 같은 크기의 아파트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었다. 정부의 1·13 전세대책에서 단기간에 전세난을 해결해 줄 것으로 제시된 카드는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의 공급 활성화였다. 그러나 본보 취재팀과 함께 이들 소형주택을 둘러본 3∼4인 가족의 주부들은 한결같이 머리를 저었다. 》

○ 소형 주택, 전세난 대안 못돼

24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은 전용 60∼85m²의 중소형이 23.7%로 가장 높았다. 소형인 60m² 이하는 19.8%, 중대형인 85m² 초과는 18.9%였다. 60∼85m²는 방이 2, 3개 딸린 3∼4인용이므로 3∼4인 가구의 전세수요가 가장 높았다는 뜻이다.

3∼4인 가족에게 두 사람이 살기에도 빠듯한 도시형생활주택은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최근 전용 23m²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도시형생활주택을 찾은 주부 김모 씨(34)도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2세 아기를 둔 김 씨는 “부엌만 해도 젖병소독기와 건조대 같은 아기 살림을 넣을 곳이 없어 보인다”며 “그나마 전세는 찾아볼 수 없고 월세가 70만 원이나 돼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도시형생활주택 인허가 물량 2만529채는 2009년 1580채의 약 13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중 89.8%가 전용 12∼50m²의 원룸형이다. 전용 85m² 이하인 단지형은 6.8%뿐이었다. 좁은 터 위에 되도록 많은 가구를 지어야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런 ‘기현상’이 빚어진 것. 심형석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는 “도시형생활주택 투자자들이 1가구 2주택에 해당되지 않는 전용 20m² 이하를 원해 ‘미니 원룸’ 공급이 집중되고 있다”며 “정부가 도시형생활주택 범위를 150채 미만에서 300채 미만으로 늘린다지만 놀이터 같은 공동시설 설치 규정은 강화하지 않아 가족들이 살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v
▼ 주변지역 전세금 동반상승 ‘득보다 독’ ▼

또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은 상업지구나 대로변에 보통 건물 한 동씩 짓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자녀를 둔 가정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정 씨가 찾은 오피스텔도 바로 옆에 모텔이 들어서 있고 주점들도 곳곳에서 영업 중이었다. 정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이곳을 지나다녀야 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김규정 부동산114 본부장은 “30, 40대 세입자 중 상당수는 교통과 학군 같은 주변 환경에 민감하다”며 “1·13 대책으로 공급되는 소형 및 임대주택 13만 채의 입지도 상당수가 주거 선호도가 떨어지는 곳이어서 실수요자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 주변지역 전세금 급등 부작용

전세난의 ‘구원투수’로 내세운 소형주택들이 오히려 인근 전세금을 끌어올리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새집인 데다 각종 생활 기구를 풀옵션으로 갖추다 보니 주변의 낡은 다세대주택이나 원룸보다 임대료가 높고 이것이 해당지역 임대료의 기준이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도시형생활주택 전용 23m²는 지난해 8월 입주 당시 전세금이 8000만∼8500만 원이었다. 그러자 지은 지 10∼20년이 지난 인근 다세대주택 소유자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김윤희 1등공인중개사 실장은 “우리 집은 방이 2개인데 원룸보다 싸다니 말이 안 된다면서 6400만 원짜리 전세를 8000만 원으로 올려 받게 해달라는 집주인들의 요구가 빗발쳤다”고 전했다.

또 소형주택들이 ‘월세붐’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대부분 투자 목적으로 오피스텔을 매입하는 집주인들이 매달 수익을 얻는 월세를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이미연 인턴기자 서강대 경영학과 4년
주애진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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