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수사 역풍 맞은 ‘檢客’… ‘劍’을 버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9일 03시 00분


■ 남기춘 서부지검장 사표

한화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를 지휘해온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51·사법시험 25회)이 28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남 지검장은 이날 오전 11시 25분 검찰 내부통신망에 법정 스님의 저서에서 따온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이제 저에게도 때가 왔다고 판단해서 정든 고향, 검찰을 떠나려 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이어 이날 오후 대검찰청을 통해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 한화 수사 논란, 교체론에 반발 성격


검찰 안팎에서는 남 지검장이 최근 청와대와 법무부에서 고검장급 검찰 간부 인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화그룹에 대한 ‘과잉수사’ 논란을 문제 삼아 문책성 전보인사를 검토하자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28일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 직전 검찰 내에서는 남 지검장이 대검 형사부장(검사장급)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흘러나왔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해 9월 수사를 시작한 이래 한화그룹이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 380개로 1077억 원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인 홍동옥 여천NCC 대표의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는 등 9건 가운데 8건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과잉수사’ 논란이 일었다.

일부에서는 남 지검장이 김승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법무부 및 검찰 수뇌부와 이견을 보인 일도 사표 제출의 이유로 꼽았다. 서울서부지검은 김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법무부 등에서 “김 회장을 불구속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남 지검장은 주변 인사들에게 “검찰총장의 정식 지휘서신이 아니면 어떤 얘기도 듣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는 홍동옥 대표의 첫 영장이 기각된 뒤 ‘부실 수사’ 시비가 일자 지난해 12월 8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보다 ‘살아있는 재벌’에 대한 수사가 더 어렵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서울서부지검은 30일 김 회장 등 한화그룹 전·현직 임직원 14명을 일괄 기소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 남 지검장 사퇴에 검사들 ‘부글부글’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지검장을 바꾸는 것은 부당한 압력 행사나 마찬가지”라며 남 지검장 교체론을 제기했던 법무부 등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남 지검장이 내부통신망에 올린 사직 인사 글에는 불과 4시간 만에 사퇴를 안타까워하는 후배 검사들의 댓글 150여 개가 달렸다. 남 지검장의 검찰 2년 후배인 최재경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뭐가 어쨌다고요. 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네요. 마음이 많이 상합니다”라고 적었다.

갑자기 수장을 잃은 서울서부지검도 충격에 휩싸였다. 봉욱 차장검사는 남 지검장의 사의 표명 직후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씀드릴 것이 없다”는 답변만 반복한 뒤 한화·태광그룹 수사팀 검사들을 모아 하루 종일 대책회의를 했다. 남 지검장은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끊은 채 집무실에 계속 머물다 오후 5시 50분경 퇴근했으며 평소 가깝게 지내던 검찰 선후배들과 밤늦게까지 통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날 검찰 내부통신망에 남긴 글에서 한화그룹 수사 얘기나 자신의 인사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훌륭한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기회 덕분에 정의감, 바른 자세, 억울한 사람 만들면 안 된다는 교훈 등 귀중한 가치를 배웠다”고 밝혔다.

○ 검찰 내 대표적 강골 검사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남종삼(南鍾三·1817∼1866)의 종손인 남 지검장은 검찰 내에서 대표적인 강골(强骨) 검사로 꼽힌다. 평검사 시절 ‘강력통’으로 이름을 날렸고 2003년 대검 중수1과장으로 재직하면서 대선자금 수사 주임검사를 맡았을 때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검찰로 소환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검찰 수뇌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처럼 비타협적인 성격 때문에 후배 검사들 사이에 그를 따르는 ‘남기춘사단’이 생길 정도였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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