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주얼 브랜드 A사는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한 대가로 매출의 36%를 ‘판매 수수료’로 낸다. 이에 비해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A사의 매출 중 34%를, AK플라자 수원점은 28%를 백화점이 가져간다. 같은 입점업체라도 백화점의 위치와 모객(募客) 능력, 브랜드 파워와 입점 브랜드의 인지도, 매출 실적 등이 다각적으로 고려된 결과라는 것이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9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주요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백화점, 대형마트의 판매 수수료를 정기적으로 공개해 경쟁을 유도할 것”이라고 했다. 판매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천차만별인 판매 수수료는 브랜드와 백화점 사이의 협상에 따라 결정되는 데다 백화점의 주요 수익원이어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 천차만별 판매 수수료
판매 수수료의 결정은 유통업체와 입점업체의 역학관계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따로 적용하는 규정이 없이 ‘많이 팔거나 백화점에 도움이 되면 낮춰준다’는 뜻이다. 한국유통학회 조사에 따르면 백화점 판매 비중이 높은 패션 잡화는 30%대의 판매 수수료를 내는 반면 백화점의 이미지를 올려준다는 이른바 해외 명품 브랜드의 판매 수수료는 10%대 또는 그 미만이다. 한 백화점의 지방 점포가 아예 일정기간 특정 명품 브랜드의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하고 입점을 성공시켰다는 소문도 유통업계에서 들리고 있다. 반면 중소 패션브랜드는 높은 판매 수수료를 물더라도 브랜드 이미지와 매출 등을 고려하면 백화점에 입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기꺼이 높은 수준의 판매 수수료를 감수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2009년 백화점 전체 업종의 평균 판매 수수료율은 25.6% 수준이다.
○ 수수료 인하, 물가 안정에 도움 될까
공정위는 수수료 수준을 공개하면 수수료가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수료가 낮아지면 판매 가격도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포함돼 있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공정위의 판매 수수료 수준 공개 추진은 백화점에 대한 압박으로 봐야 한다”며 “시장 자체가 독과점인 현실에서 시장에 맡겨 놓아서는 공정하게 가격이 책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문에서 나온 조치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판매 수수료가 공개된다고 해서 수수료가 낮아질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수수료 공개를 추진하기 전에 왜 입점 업체들이 수수료 부담을 안고도 백화점에 기를 쓰고 입점하려고 하는지를 정부가 우선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원가공개다” vs “영업비밀 아니다”
백화점업계는 판매 수수료를 공개하는 것은 “사실상의 원가 공개”라고 반발하고 있다. 주요 백화점들은 식당가 등 일부 매장만 임대 방식으로 운영할 뿐 70% 이상의 매장을 수수료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업체별 수수료를 일일이 공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령 ‘백화점 잡화군의 수수료율은 21∼29%라는 식으로 수수료 수준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라며 “수수료는 납품업체의 공급가격과 대형 유통업체의 판매가격을 비교하면 밝혀지는 것으로 원가도 아니고 영업비밀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입점 업체가 다른 입점 업체의 수수료 수준을 알 수 없다면 백화점과의 수수료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수수료가 공개되면 이런 불리함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화점과 입점업체의 거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공정 여지’를 없앨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의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통업체들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롯데백화점은 15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협력회사 초청 컨벤션에서 ‘동반성장 실천방안 선포식’을 갖고 판매 수수료를 점차적으로 낮추는 ‘슬라이딩 마진 인하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매출 목표를 10% 이상 초과 달성한 브랜드에 1∼5%포인트의 판매 수수료(마진) 인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의 ‘슬라이딩 마진 인하제’는 결국 매출이 높은 브랜드에 혜택을 준다는 취지여서 기존 수수료 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제도라는 지적도 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판매 수수료 ::
유통업계에서 관례적으로 사용되는 용어. 백화점업계는 입점업체로부터 매출의 일정 부분을 받아 마케팅, 고객관리, 서비스 등의 비용에 사용하고 남은 부분을 수익으로 잡는다며 판매 수수료라는 용어보다 ‘마진(이익)’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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