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자문형 랩’ 잘 알고 투자합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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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문형 랩이 뜨는 것을 보면 ‘박현주 펀드’의 출범 때가 떠오른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1999년 초 자신의 이름을 딴 뮤추얼펀드로 흥행몰이에 성공해 오늘날 미래에셋그룹의 주춧돌을 놓았다. 박현주 펀드는 직접 주식투자를 하지 않아도 주가 상승의 과실을 일정 부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간접투자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에셋의 성공신화에는 시장의 추세를 읽는 박 회장의 동물적 감각이 핵심 역할을 했지만 어느 정도 ‘운’도 따라 줬다고 본다. 1999년 1월 선보인 박현주1호펀드는 그해 말에 100% 안팎의 수익률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해 12월에 설정된 박현주2호펀드에는 3000억 원 가까운 개인 자금이 몰리는 절정의 인기를 이어갔다. 돌이켜보면 1999년의 성과는 펀드매니저의 운용능력이라기보다 시장이 준 ‘선물’이라는 해석에 더 끌린다. 실제로 그해 코스피는 연초 대비 83%가량 올랐다. 펀드는 기초가 되는 증시가 상승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용쓰지 않더라도 시장이 좋으면 성과를 낼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용회사들은 실력이라고 믿었다. 박 회장의 첫 시련은 주가가 급락세로 돌아선 2000년에 찾아왔다. 1999년 1년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던 코스피는 2000년 들어 기를 펴지 못하고 정확히 반 토막 났다. 원금의 절반가량 평가손실을 본 박현주2호펀드 투자자들은 그해 10월 펀드 임시주총에서 “박현주 사장과 운용담당자는 사재를 털어 손실을 보전하라”고 주장했다. 투자자들은 당시 박 사장을 회의장 단상에까지 불러 올려 “펀드에 이름을 걸고 돈을 모집했으면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간접투자형 상품 도입 초기 ‘저축’과 ‘투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덥석 펀드상품에 가입했다가 상투에 물린 사람들의 어이없는 주장이었지만, 고객의 투자성향을 무시하고 가입을 권유한 증권사와 운용사들은 상승장에선 볼 수 없었던 섬뜩한 장면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최근 자문형 랩에 돈이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과열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 10대 증권사 기준으로 자문형 랩 잔액은 2009년 말 8000억 원대에서 올해 1월 말 7조3000억 원가량으로 13개월 만에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 들어서만 한 달새 2조4000억 원이나 늘었다. 주식형펀드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해주는 랩 투자가 지나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인데, 박현주펀드 때와 마찬가지로 상승장에서 거둔 고수익에 현혹돼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것처럼 보여 걱정이다. 자문형 랩은 펀드와 달리 10∼15개 소수 종목에 집중투자하기 때문에 조정장에서는 평가손실이 불가피하다. 고위험 상품인데도 적립식까지 만들어 서민 투자자들을 유혹한다니,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묻고 싶다.

주식형펀드로의 자금 유입이 예전만 못하다고들 하는데, 달리 보면 펀드 투자자들이 신중해진 것이니 부정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몇 번의 하락장에서 큰 손실을 경험한 결과 지금은 들어갈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선 때문이 아닐까. 펀드가 주식시장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는 신중한 투자자가 많아야 한다. 이들은 떠밀려 장에 들어오지도 않지만, 휩쓸려 떠나지도 않는다. 자문형 랩이 대체투자로 자리 잡으려면 성장통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강운 경제부 차장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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