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지 25년이 된 현대자동차가 진출 기념일인 2월 20일을 조용히 보냈다 해서 호사가들의 화젯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결혼으로 치면 25주년인 은혼식(銀婚式)인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 행사 없이 지나가긴 했죠.
현대차 북미 법인은 다음 날인 21일에 마치 남의 일인 양 ‘어제 미국시장 진출을 기념했고 우리가 그동안 이런 저런 성과를 거뒀는데 앞으로는 더 잘하겠다’는 내용의 길지 않은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이에 비하면 뉴욕타임스가 현대차 미국 진출 기념일을 앞두고 19일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자동차의 조지아 공장 얘기를 쓰며 “현대·기아차가 미국의 죽은 도시를 살렸다”고 보도한 게 호들갑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면 현대차가 왜 25주년 기념일을 남에게 알리지 않고 지나보냈느냐? 호사가들의 분석은 이렇습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25년 전을 떠올리게 했다가 ‘싸구려 차’ 이미지만 강해질 뿐 득이 없다고 현대차가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아마 독자 여러분 중에도 가끔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현대차를 언급하며 ‘그 차를 사는 사람은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뭔가 정상이 아니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걸 보신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마치 요즘 한국에서 중국산 불량 ‘짝퉁’ 제품을 업신여기는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사실 현대차를 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1986년부터 2011년까지 현대차의 미국 시장 진출사(史)는 정말 파란만장합니다. 미국 진출 첫해인 1986년 현대차는 ‘엑셀’만으로 16만 대 넘게 팔았고, 이듬해인 1987년에는 26만여 대를 파는 깜짝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나 품질과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은 판매 증가는 요즘 말로 ‘안티’만 늘렸을 뿐이었습니다. 1989년 캐나다에 건설한 쏘나타 공장은 6년 만에 철수해야 했고, 1998년에는 판매량도 10만 대 밑으로 떨어졌지요.
2000년대 초반 판매량이 30만 대까지 늘었지만 싸구려 이미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2년 보증기간을 10년, 10만 마일로 늘린 것이 많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불러 모았지만 ‘품질 경영’을 통해 진짜로 차의 품질을 높이지 않았던들 그런 선언도 소용이 없었을 겁니다.
2008년 이후 세계 경제위기로 미국 차들이 몰락하고 리콜 사태로 도요타가 주춤하는 동안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약진은 그야말로 눈부십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미국 내 판매량 50만 대를 넘겼습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소비자 잡지인 컨슈머리포트는 자동차 특집호 표지모델 차량으로 ‘쏘나타’를 선정하고 ‘현존하는 최고의 패밀리 세단’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죠.
현대차가 미국에서 이렇게 잘나가지 않았던들 현대차가 25주년 행사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누가 관심이나 가졌겠습니까. 환골탈태(換骨奪胎)한 현대차가 5년 뒤에는 ‘과거’ 걱정 없이 미국 시장 진출 3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를 수 있도록 계속 잘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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