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 이곳에서는 동반성장위원회의 동반성장지수안 확정 기자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위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앞서 오전 7시 반부터 진행된 동반성장위 3차 회의가 제 시간에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40분가량이 지나서야 동반성장위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장에 도착했다. 동반성장지수 기준 확정을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격론이 오갔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반성장 이날 동반성장위는 동반성장지수 평가대상 대기업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56개 대기업의 명단을 확정 발표했다. 동반성장위 측은 “2009년 매출액 상위 200대 기업 중 사회적 관심이 크고 동반성장 파급효과가 큰 대기업을 중심으로 골랐다”고 설명했다. 공공·금융기관 및 운수·호텔·테마파크 산업 등 지수를 적용하기에 부적합한 산업은 제외됐다.
이들 대기업은 전기·전자, 기계·자동차·조선, 화학, 건설, 도소매, 통신 등 6개 분야에 걸쳐 있다. 56개사의 총 매출은 596조 원(2009년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56%에 육박할 정도로 강력한 기업들이다. 그룹별로는 삼성 계열사가 10개로 가장 많았다.
평가 대상으로 선정된 56개 대기업은 앞으로 정부와 여론의 ‘동반성장 밀착감시’를 받게 된다. 평가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진행하는 ‘대기업 평가’와 동반성장위가 진행하는 ‘수요자(중소 협력사) 평가’ 두 가지다.
대기업 평가에서는 △표준하도급 계약서 도입 △금융·대금·기술지원 △협약내용의 이행 여부 등 대기업별 ‘동반성장 내역’을 평가할 예정이다. 또 하도급법 위반, 임직원 비리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끼친 기업은 감점하기로 했다. 특히 대기업의 협력 책임범위를 2차 협력사로까지 확장해 대기업과 1차 협력사 간 동반성장뿐 아니라 1·2차 협력사 간 동반성장 실적까지 대기업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수요자 평가는 각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을 설문해 해당 대기업의 동반성장노력에 대한 중소기업의 만족도가 어느 정도인지 보는 것이다. 설문 항목에는 △구두 발주, 기술 탈취 등 불공정 거래 경험 △납품 단가 및 결제 만족도 △거래 대기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침범 여부 등이 포함됐다.
이날 정운찬 동반성장위 위원장은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대기업 주주와 임직원뿐 아니라 협력사와도 나누게 하는 ‘프로핏(이윤) 셰어링’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낸 데는 중소 협력사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나누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대신 중소 협력사에 기술협력자금을 지원한 대기업에 대해서는 그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그러나 동반성장위의 이 같은 방안이 얼마나 힘 있게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청와대의 ‘동반성장 드라이브’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과 달리 최근 재계가 “지수가 졸속으로 마련됐다” “객관적이지 못하다” “현실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위의 힘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날 발표대로라면 앞으로 위원회는 56개 대기업과 1000개가 넘는 중소 협력사를 평가·설문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동반성장위 인력은 50명 남짓이고 그나마 일이 있을 때만 참여하는 비상근직이 상당수다.
예산도 부족하다. 당초 동반성장위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150억 원을 끌어다 쓸 계획이었다. 재계를 감시하는 데 재계의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도 “전경련 자금에만 의지하면 위원회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당장 돈이 없는 위원회는 결국 앞으로 5년에 걸쳐 20억 원씩 총 100억 원의 돈을 전경련에서 받기로 했다. 정부는 올해 14억 원을, 중소기업중앙회는 2억 원을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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