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자는 1997년 설립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해 말 외환위기가 터지자 공장이 세워질 충북 음성에 땅만 파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경기가 나아진 2001년 처음으로 반도체 생산을 시작했지만 그해 미국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면서 매출은 0원을 기록했다. 그 이후 사명은 동부아남반도체로 바뀌었다가 동부일렉트로닉스로, 또 동부하이텍으로 세 번 바뀌었다. 중간에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는 인수합병(M&A)도 한 번 했다. 그렇게 적자를 내며 7년이 흘렀다. 상황이 나아지는 듯했지만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적자는 이어졌다.
국내 유일의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 동부하이텍은 이렇게 10년 동안 적자를 봤다. ‘반도체 파운드리’는 설계와 생산을 같이 하는 다른 반도체회사와 달리 설계업체의 위탁을 받아 생산만 담당하는 회사다. 그동안 지독히도 운이 없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1분기(1∼3월)에 처음으로 흑자를 낼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 직원 사기 충만
22일 방문한 충북 음성의 동부하이텍 반도체 생산 라인에는 젊은 여직원들이 붙였다는 ‘울트라캡숑왕파발마’라는 표식이 붙은 반도체 웨이퍼(반도체를 만드는 토대가 되는 얇은 판)를 담는 카세트가 보였다. 반도체는 보통 25∼30일 동안 약 300개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하지만 ‘울트라캡숑왕파발마’ 같은 표식이 붙은 카세트는 5∼10일 만에 모든 공정을 마친다. 직원들이 계속 옆에 붙어서 일을 빨리 진행하는 덕분이다. 이렇듯 납기일을 맞추려는 노력에 파트너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생산담당 서병윤 팀장은 “2009년 3월 이후 라인이 100% 풀가동되고 있다”며 “그 덕분에 직원들 사기도 올랐고 이익구조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는 처음으로 직원들에게 직급에 따라 성과급도 줬다. 현금이 아닌 주식이어서 실망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올해 들어 동부하이텍 주가가 40%가 넘게 오르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매일 주가를 확인하며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25일 종가는 1만4950원. 음성 생산라인을 총괄하는 박경신 상무는 “사원들이 자신감이 높아지다 보니 자발적으로 지난해 대비 25∼30% 높게 잡은 생산성 향상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부하이텍의 지난해 매출은 2009년보다 25% 늘어난 5934억 원이었다.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은 “아직 적자지만 1분기부터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아날로그 반도체로 승부
동부하이텍의 실적 회복은 단순히 IT업계 호황 때문이 아니라 아날로그 반도체 등 특화 파운드리 분야로 제품을 집중하면서 경쟁력 확보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이 높은 아날로그 반도체 비중이 확대되면서 평균 판매단가도 높아졌다.
동부하이텍은 특히 지난해 아날로그 등 세계 특화 파운드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애플의 아이폰4 내부 메인보드를 살펴보면 아날로그 반도체가 디지털 반도체보다 3배 이상 많을 정도로 쓰이는 곳이 많다. 아날로그 반도체의 세계 시장 규모도 커서 연간 360억 달러(약 40조 원)에 이른다. 한국의 주력 수출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시장 규모(441억 달러)에 버금가는 시장인 셈이다.
재계에서는 동부하이텍의 흑자전환 기대감은 온갖 반대에도 10년 동안의 적자를 버텨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뚝심 덕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음성 공장 1층에는 “우리는 비메모리업에 헌신하여 조국의 선진화에 기여한다”는 김 회장의 친필 액자가 걸려 있다.
오랜 과제였던 동부하이텍의 정상화가 가시화되면서 동부그룹 각 계열사의 투자활동도 매우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동부그룹은 신성장동력 부문에 향후 5년간 10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하이텍이 올해는 그룹의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아날로그 반도체 ::
2진수를 기초로 정보를 처리하는 디지털과 달리 아날로그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빛·소리·압력·온도 등 인간이 감지하는 자연계의 신호를 처리하는 반도체다.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도록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거나, 반대로 디지털 신호를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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