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레이더 10명중 3명 “취업 안돼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일 03시 00분


■ 본보-팍스넷, 데이트레이딩 투자자 707명 설문

지방대 공대를 졸업한 최모 씨(28)는 아침에 눈을 뜨면 컴퓨터를 켜고 지난밤 미국 증시 동향 등을 꼼꼼히 훑는다. 신문을 보며 ‘오늘 투자할 종목’을 마음속으로 정한 뒤 주식시장이 본격 열리기 전인 오전 8시부터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그의 ‘직업’은 하루에만 수십 차례 주식을 사고팔아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데이트레이더’다.

최 씨는 대학 졸업 후 5개월간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기회만 닿으면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취직을 못해 데이트레이딩에 나선 친구들을 볼 때면 언제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그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불안하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취업난으로 데이트레이딩에 뛰어드는 고학력 청년실업자들이 늘고 있다. 데이트레이더들이 주로 거래하는 키움증권에 따르면 데이트레이딩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4만 명으로 추산된다.

○ 고학력 젊은층 몰려


서울의 사립 명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강모 씨(37)는 8년차 데이트레이더로 살고 있다. 서울 잠실에 얻은 오피스텔이 그의 집이자 직장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미국 증시와 아침신문을 살핀 뒤 오전 8시 50분부터 주문을 넣는다. 개장 이후 주가 등락이 가장 심한 오전 9시 반까지가 본격적인 데이트레이딩 시간대다. 그는 “이 일에 꽤 이력이 붙어 수익을 어느 정도 내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가 팍스넷에 의뢰해 데이트레이딩을 하는 전업투자자 7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 30대의 비중이 61.9%에 이르렀다. 학력은 대졸자(63.6%)와 석·박사학위 소지자(9.3%) 등 고학력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전업투자를 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10명 중 3명꼴로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서’(29.1%)라고 답해 최근의 취업난을 반영했다. 사례로 든 강 씨처럼 수익을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응답자의 57%가 도시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380만 원·2009년 3인 가족 기준)에 못 미치는 수입을 얻었으며, 28.4%는 “벌기는커녕 까먹고 있다”고 털어놨다.

조준범 키움증권 리테일기획팀장은 “초기 데이트레이더는 명예퇴직한 중장년층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청년실업 등을 반영해 대졸 이상의 고학력 젊은층이 대거 데이트레이딩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 투기적 초단타매매 등 확산


김경일 씨(40)는 정보기술(IT) 관련 대기업에 10년간 다니면서 오랜 준비 끝에 데이트레이더가 된 경우다. 그는 “치밀한 준비 없이 도피처로 데이트레이딩을 선택하면 버티기 힘들다”며 “특히 투기적 목적으로 초단타매매를 하거나 파생상품 투자에 뛰어들면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데이트레이더가 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지만 수입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를 지속적으로 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로 설문에 응한 데이트레이더의 60.3%는 전업투자 경력이 5년 미만으로 짧았고, 10년 이상인 경우는 5.1%에 불과했다. 윤유석 팍스넷 증권포털팀 부장은 “젊은 투자자들 상당수가 생계 유지의 어려움, 무직자라는 주변의 시선, 외로움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투기적 초단타매매, 인터넷 주식카페 등을 통한 불법 행위가 데이트레이더를 통해 확산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특히 적은 돈으로 수백, 수천 배의 수익을 노리는 파생상품의 기형적인 성장은 데이트레이더들의 존재를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도현 삼성증권 프리미엄상담센터장은 “개인투자자 10명 중 9명은 실패하는 파생상품 시장이 이렇게 큰 것은 데이트레이더들 때문”이라며 “국내 증시 규모가 커질수록 대박을 노리고 뛰어드는 데이트레이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 들어 지난달 24일까지 코스닥시장 거래량에서 데이트레이딩이 차지하는 비중은 48.55%로 지난해 평균(47.09%)보다 높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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