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삼성전자에 인수된 의료기기 업체 메디슨의 한 직원은 요즘 사내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헬스케어사업을 총괄하는 방상원 HME 팀장(전무)을 메디슨 대표이사로 임명하는 등 임원 간부 3명을 메디슨에 보냈다. 이어 직제 변경을 포함해 대대적인 ‘삼성식 조직 개편’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메디슨 손원길 대표와 김재경 연구소장 등 핵심 임원 4명이 열흘 전 줄줄이 사표를 낸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총 8명의 임원 중 절반이 옷을 벗은 것이다.
당초 삼성은 메디슨 인수 과정에서 전 직원들에게 2년간 고용보장을 약속했지만 연구개발(R&D)을 책임진 핵심 임원들이 오히려 스스로 회사를 떠난 것이다. 이와 함께 삼성은 그동안 수익을 많이 내지 못한 X선 장비 등 비주력 사업군에 대한 정리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해당 사업군에 속한 임직원들이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메디슨 관계자는 “과거 메디슨은 사원도 결재권을 갖는 등 직원들의 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했는데 삼성식 조직문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복잡한 의사결정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라며 “핵심 임원들의 사퇴도 이런 환경 변화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메디슨은 1985년 설립된 벤처 1세대 기업으로 임직원들의 자부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부도로 법정관리의 시련을 겪었지만 탄탄한 기술력과 유통망을 바탕으로 자체 회생에 성공했다. 경영악화로 인수된 다른 기업들과 상황이 다른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최근 10년 사이 해외 기업을 3개밖에 인수하지 않는 등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인 삼성의 관련 노하우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 업계에선 삼성의 수직적인 조직관리가 창의성을 중시하는 벤처기업 성향의 메디슨과 얼마나 융합될 것인지에 따라 이번 인수합병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메디슨 인수를 계기로 특허와 영업망을 확보하더라도 핵심 인력을 놓친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의 강점을 메디슨과 결합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수순일 뿐 메디슨의 조직문화를 강압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오늘의 삼성을 만든 것은 1등을 모방해 내 것으로 흡수하고 빠르게 추격하는 이른바 ‘패스트 팔로어’ 전략 덕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애플의 ‘아이폰 쇼크’를 계기로 삼성 내부에서도 기존의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창조경영’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삼성이 의욕적으로 뛰어든 신수종 사업에서마저 과거의 조직운영 방식을 고수한다면 창조경영의 미래는 어두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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