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은 “은행에 돈을 넣으면 인플레이션 상승분도 못 건진다”며 “과거 주식 투자가 교양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전공필수”라고 말했다. 신영자산운용 제공
‘마라톤 펀드’로 유명한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49)은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가치투자 전문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이 회복될 때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경기 변동에 민감한 대형주가 각광받으면서 가치투자자들이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도 했다.
대형주 위주의 장세가 흔들리는 시기를 맞아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신영자산운용 사무실에서 허 본부장을 만났다. 다시 ‘가치주 시대’를 외칠 줄 알았던 허 본부장은 의외로 “주식에 95%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 상품보다 60%만 투자하는 주식혼합형 펀드가 노후를 바라보며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혼합형 펀드는 주가가 오르면 수익이 확정되고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주식을 살 기회가 생기는 구조라 적립식 펀드보다 훨씬 안정적인 구조”라며 “가족·지인에게 모두 주식혼합형 펀드를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주가가 올라 주식비중이 60%를 넘어가면 15일 안에 비중을 60%로 맞춰야 하기 때문에 수익이 확정되는 구조라는 뜻이다. 그는 주식에 95%를 투자할 경우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아야 하고, 투자자가 세상 모든 근심을 안고 살아야 하지만 혼합형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주식시장이 흔들릴 때 대기자금으로 싼 종목을 더 사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가 관리하는 ‘신영연금60 증권 전환형(주식혼합)’ 펀드는 2001년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은 249.2%, 연 복리 환산수익률은 14.9%다. 신영밸류고배당증권투자신탁 C1형이나 마라톤증권투자신탁 A형 펀드의 연 복리 환산수익률인 20%대보다는 못하지만 최근 3년간의 연 복리 환산수익률을 보면 8.1%로 각각 7.1, 4.4%인 두 펀드를 앞선다.
지난 2년간 코스피는 지속적으로 올라 2,000 선을 뚫었지만 개인은 웃지 못했다. 외국인 자금이 증시에 불을 지폈기 때문에 그들이 선호하는 대형주들만 계속 오르는 구조였다. 허 본부장은 “재료에 우선하는 게 수급이라는 증시 격언이 있듯이 어쩔 수 없는 구조였다”면서도 “이제는 주식시장이 ‘생각’을 하면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외국인 자금이 빠지는 대신 국내 자금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에 돈을 넣으면 인플레이션 상승분조차 수익이 나지 않아 예금하면서도 자산이 줄어드는 시점이 됐다”며 “자산을 시간가치가 녹아드는 곳에 투자해야 하는 시대로, 주식투자가 지금까지는 교양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전공필수”라고 강조했다.
허 본부장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4∼5%에 불과한 상황에서 그 이상의 성장을 하는 분야는 우량 기업밖에 없다”며 “그중에서도 경제성장률의 2, 3배로 성장하는 기업을 찾아내는 게 운용본부장인 내가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남들이 하는 대로 마음 편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나면 늘 결과가 안 좋았다며 최근 불고 있는 자문형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 열풍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그는 가치투자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조언한다. 가치투자는 부동산 투자와 비슷하기에 국민 모두가 한 번은 해본 투자라는 것이다. 허 본부장은 “부동산 가격은 4, 5년 쉬고 2년 정도 오르는 패턴을 갖고 있는데 쉬는 기간은 임대수익으로 먹고산다”며 “가치투자도 몇 년 보유하면 시세가 분출될 종목을 사서 중간에는 배당을 받다가 결국 투자자들이 가치를 재발견하면 큰 수익을 먹는 구조”라고 비유했다. 그는 3년간 보유하던 아가방을 2배의 수익을 남기고 최근 팔았다. 그는 “이 기업의 주가가 움직인 건 최근이지만 회사가 변한 게 아니라 투자자들의 평가가 변했다”며 “저평가된 우량 가치주를 미리 사는 게 가치투자자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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