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이후 물가상승 우려에 리비아 사태, 저축은행 우려 등이 겹치며 금융시장의 불안심리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장기적인 물가상승 가능성은 거액자산가들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가장 큰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각종 투자설명회의 현장에서도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시대의 도래 가능성 및 대처방안’에 대해 물어오는 거액자산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거액자산가들의 관점에서 볼 때 물가상승 위협에 비한다면 금융시장의 단기적인 불안은 그저 흘러가는 가십거리 정도인 것이다.
거액자산가들이 의외로 주식자산의 변동성 증가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보유할 자신만 있다면 우량자산의 가격 회복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교훈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리비아 사태 등으로 인한 금리 및 환율시장의 불안한 움직임도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거액자산가들에게는 같은 의미에서 큰 걱정거리로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가상승 위협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단발성 변수라면 물가상승의 위협은 장기적인 자산배분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메가톤급 변수이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중심으로 한 인플레이션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 지속적인 금리인상 사이클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거액자산가 중 상당수는 1970, 80년대 물가 상승의 시대를 경험했던 세대로서 급등하는 국제유가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저물가 시대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을 제외하면 전체 금융자산 중 채권 및 예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거액자산가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한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거액자산가들에게 장기채권은 절대적인 저금리의 사이클에서 ‘무조건 사 놓으면 돈이 되는’ 아주 좋은 투자자산이었다. 주식만큼의 단기수익은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장기채권에 투자한 금액의 ‘실질가치’가 위협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물가상승 압력이 장기화된다면 은행 대비 조금 높은 수준의 금리를 지급하는 장기채권 중심의 포트폴리오가 실질가치를 반드시 보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올해 가시화되고 있는 물가상승 압력은 장기채권과 예금 중심으로 구성된 거액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거액자산가들은 ‘은행예금 대비 소폭의 초과금리’와 ‘절세효과’가 금융자산의 실질가치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미 장기적인 물가상승에 대한 보장효과가 매우 탁월한 물가연동국채에 대한 거액자산들의 관심은 폭발적인 수준이며, 작년 이후 실물 금 투자에 대한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거액자산가들이 주식자산의 비중을 크게 늘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자활동에서 그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명목가치의 보전’에서 ‘실질가치의 보전’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향후 자산관리자들에게 하는 거액자산가들의 질문은 ‘은행예금 대비 금리가 좋은 상품이 무엇인가?’에서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 무엇인가?’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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