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의 입, 어떻게 움직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금융시장은 주목한다, 한은 총재 화법의 미묘한 변화까지…10번의 금통위 직후 발언 분석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일러스트레이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일러스트레이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장황한 느낌을 준다.” “핵심을 모르겠다.”

지난해 4월 취임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화법(話法)에 대한 금융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는 다양한 화법을 통해 금융시장을 이끌고 간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은유적인 화법을 통해 시장의 쏠림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벤 버냉키 의장은 정책 방향성에 대한 힌트를 주지만 이로 인해 시장을 술렁이게 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동아일보 경제부는 김 총재와 이성태 전 총재가 매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남긴 발언 속기록을 비교해 두 사람의 화법의 특징을 살펴봤다. 김 총재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번, 이 전 총재는 퇴임 직전인 지난해 3월까지 10번의 발언록을 대상으로 했다. 신효필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형태소 분석기’를 돌려 유독 많이 쓰인 명사, 부사(어), 한국어에서 특징적인 어미 등을 골라낸 뒤 이를 토대로 커뮤니케이션 및 금융시장 전문가들이 전·현직 총재의 화법을 분석했다.

○ “김 총재, 해명성 발언 많아”


김 총재가 특히 많이 쓰는 표현은 ‘잘 아시다시피’로 총 42번이었다. 이 전 총재가 6번 사용한 점에 비춰보면 김 총재 특유의 스타일인 셈이다. 이 표현은 ‘여러분도 나처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언어, 커뮤니케이션 관련 전문가들은 듣는 사람에게 동의를 강하게 요구하는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동의를 요구하는 화법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대체적으로 이견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상과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은의 한 팀장급 직원은 “총재의 말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특성이 강하다”고 전했다.

김 총재의 화법 가운데는 부연하는 표현이 많았다. 앞의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끌어 내는 ‘왜냐하면’이라는 표현은 이 전 총재가 12번 쓴 반면 김 총재는 43번이나 썼다. 대체로 앞의 문장을 받아 부연하는 표현인 ‘이렇게’도 이 전 총재가 79번 쓴 반면 김 총재는 378번이나 사용했다. 논리성을 강조하는 ‘종합적’이란 표현은 이 전 총재는 3번, 김 총재는 23번 썼다.

자세하고 논리적인 설명을 통해 듣는 사람에게 친절한 느낌을 주는 것은 김 총재 화법의 장점이다. 교수 출신으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내면서 어려운 얘기를 쉽게 풀어내는 화법에 익숙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황하게 들린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김 총재는 ‘금리를 올려야 했는데 못 올린 이유는 이러하다’는 식의 해명성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원론적인 얘기여서 너무 장황한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행장이 김 총재가 주재하는 은행장 회의에 다녀오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핵심을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채권 전문가들은 “교과서적인 얘기보다 경제 현황에 대한 총재의 판단을 더 듣고 싶다”고 말했다.

○ 판단을 유보하는 표현, 겸손하면서 모호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는 듯한 표현도 김 총재의 화법에서 두드러진다. ‘회복되겠습니다마는’ ‘상승했습니다마는’ 등 ‘∼마는’이라는 조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 표현은 이 전 총재도 137번 사용했지만 김 총재는 245번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에 말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문이나 그와 어긋나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일부에서는 ‘∼습니다’가 들어가 독단적이지 않고 겸손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도 있었다. 자기주장을 펴기 전에 다른 의견도 있음을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얘기다. 반면 상반된 내용을 함께 전달해 ‘양다리 화법’ 같은 느낌을 준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움말씀 주신 분: 강남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연종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나다순)
▼ 그린스펀의 모호한 표현은 시장 쏠림 막기도 ▼

하지만 그린스펀 전 의장의 경우처럼 모호한 표현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실제 정책결정의 방향이 발언과 확연히 다를 때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은 “김 총재는 통화정책과 관련해 명확한 신호를 보내고 있지 못하다”며 “지난해 12월 금리 동결 뒤 올해 1월 인상 신호가 거의 없었는데 1월에 금리를 올렸고, 시장에서 2월에는 인상한다는 공감대가 강했는데 정작 동결됐다”고 설명했다. 이 전 총재도 화법이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재임 후반부로 갈수록 비교적 명확해졌다는 평가다.

경제 관련 용어의 경우 김 총재는 국제경제에 관한 용어를 많이 썼다. 이 전 총재는 한 번도 안 썼지만 김 총재는 33번이나 쓴 용어가 ‘글로벌’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이 전 총재가 한 번도 인용하지 않은 반면 김 총재는 각각 17번, 6번 언급했다. 국제경제를 중시하는 김 총재의 성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거시와 관련된 경제 용어를 많이 쓴 점도 특징적이다. 김 총재는 ‘거시경제’ ‘거시변수’ 등을 유독 많이 썼다. 반면 이 전 총재는 ‘대출’ ‘부동산’ 등을 많이 언급했다. ‘경제 위기’에 대해서는 경제 회복기에 재임하고 있는 김 총재가 위기 상황에 있던 이 전 총재보다 10번 더 언급한 점이 눈길을 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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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11-03-09 10:52:44

    한은 총재의 화법이라는 다소 특이한 소재가 인상적입니다. 국내 금융시장 변화를 화법을 통해 예상해 볼 수 있는 신선한 방법의 분석이네요. 앞으로도 좋은 기사 계속 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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