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 지진이 발생한 지 약 5시간 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LG 트윈타워에는 LG전자 ‘위기대응상황실’이 가동됐다. 법인관리, 인사, 구매, 대외협력, 홍보 등 관련 부서에서 1명씩 차출돼 일본 판매법인은 물론이고 현지 직원, 부품 협력업체의 상황 파악 및 지진 영향 분석에 들어갔다. 이들은 주말과 휴일에도 출근해 시시각각 비상연락망으로 일본에서 들어오는 소식을 사내에 공유했고 중요한 사항은 정리해 구본준 부회장에게 보고했다. 》
LG전자 관계자는 “이번 지진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일본 내수시장은 위축될 것으로 보이지만 도쿄 등지는 지진 영향이 크지 않아 내수시장도 곧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대지진은 한국 기업도 다급해지게 만들었다. 일본에는 270여 개 국내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약 900명의 주재원이 근무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이 세 번째로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이자 한국이 두 번째로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다. 양국은 경제적 산업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여서 한국 기업은 주말에도 피해 규모 파악과 대책 마련을 위해 일본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삼성전자는 별도의 대응팀을 꾸리지는 않았지만 구매와 물류 등 일본과 연관이 많은 부서들은 주말에도 출근해 일본 상황을 계속 점검했다. 일본에 4개의 가공센터를 둔 포스코는 요코하마 가공센터 출입구에 균열이 생기긴 했지만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코재팬 직원 40여 명과 서울 본사의 마케팅 부서 직원들은 주말에 출근해서 피해 상황을 파악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일본에 상용차 판매법인만 있다. 버스 등 상용차를 한 달에 50여 대 수출하고 있어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본 및 태평양 연안 국가로의 출장은 자제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이 1% 내외로 적고 재고도 두 달 치가량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일본 아이신으로부터 베라크루즈 변속기 부품을, 덴소로부터 엔진 관련 부품을 수입하고 있어 일본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리스크분석팀을 가동해 관련 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 중이며, 거래 관계인 일본 정유회사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일본에 생산시설은 거의 없고 주로 사무실만 운영하고 있어서 직접적인 지진 피해액은 적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국 기업의 피해는 주로 미야기, 후쿠시마 현 등 대지진 피해지역에 거점을 둔 유통 및 물류업체에 집중됐으며, 피해 지역에 있는 일본 거래 기업과 연락이 두절돼 곤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소주 판매로 약 156억 엔(약 2120억 원)의 매출을 올린 롯데주류는 센다이 물류창고를 덮친 지진해일에 피해를 입었다. 롯데주류 측은 센다이에 보관하던 주류 재고가 2억∼3억 엔어치라고 밝혔다. 주로 컨테이너에 보관하고 있어 물이 빠지고 정돈이 어느 정도 끝난 뒤라야 정확한 피해액을 산정할 수 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4개월 전 수출을 시작한 막걸리 판매량이 차츰 늘고 있는데 항구 폐쇄, 도로 파손 등으로 출하 물량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센다이에 지사를 둔 진로는 물류창고가 피해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배송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대부분 도쿄와 오사카에 있지만 대지진 주요 피해 지역에 원자재 조달처, 현지 유통과 물류거점이 있다면 해당 지역의 경제활동 전면 중단에 따라 피해가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 수출입업체 등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고 피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대지진 피해 중소기업지원대책반’을 운영하기로 했다. 대책반은 지진사태로 일본에서 들여오는 부품소재와 원자재 수급에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국내 중소기업의 직·간접적인 피해 현황을 조사하여 중소기업청 등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피해 중소기업의 지원방안을 적극 모색할 예정이다. 중기중앙회 국제통상실 김한수 실장은 “단기적인 영향도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일본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악화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토요타와 한국닛산 스바루 코리아 등 일본 자동차업체의 한국 법인은 일본에서 생산된 차량의 국내 수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본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