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6개부처 합동 ‘비상대책반’ 구성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4일 03시 00분


“日 수입의존도 높은 부품 재고량 충분… 국내 영향 제한적”

정부는 13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관련해 16개 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범정부 차원의 비상대책반을 꾸리기로 했다. 또 일본의 대지진이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현 단계에서는 일본 강진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제 신용평가사 등에서도 대체로 일본이 피해를 충분히 감내할 능력이 있다고 보고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지진 발생 직후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되었으나 이후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지진 소식이 전해진 12일 미국 뉴욕시장의 주가는 올랐으며 일본의 원유 수요 감소에 따른 전망으로 국제유가는 하락하고 엔화 가치는 오히려 오르는 등 세계경제에 큰 파장은 없었다. 또 일본 의존도가 높은 수입부품의 재고량이 단기적으로 충분해 수급에 문제가 없고 증시나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적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윤 장관은 “일본이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지난해 우리나라와 교역규모가 924억 달러인 제2의 교역 상대국이라는 점에서 좀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각 부처의 대응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핵심부품 등 실물 부문 점검을 강화하고 교육과학기술부와 함께 일본 원전 사고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 국토해양부는 물류상황 점검과 수송 대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금융 및 외환시장이 외부충격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일이 없도록 시장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필요 시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비상금융 통합상황실을 24시간 체제로 운영하고, 두 기관의 간부급으로 구성된 금융합동점검회의도 수시로 열어 시장 상황을 평가하면서 필요한 경우 신속히 대처키로 했다. 아울러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본 국내 중소업체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면 정책금융 등을 통한 지원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관세청은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세행정 특별 지원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일본 물류 여건 악화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24시간 통관체제를 운영하고, 지난해 납세액의 50% 범위에서 최대 6개월까지 기한을 연장하거나 분할납부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일본 수출입업체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한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일본 강진에 따른 구호와 조기 복구를 위해 각 부처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하겠다”며 “일본기업과 거래하는 한국기업에도 중요 교역 파트너인 일본과 장기적인 관계를 위해 급격한 대금회수나 거래처 변경을 자제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국 증시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 ▼
日자본 빠져나가면 증시 부정적… 엔화상승땐 수출기업 강세 예상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단기적으로 악재임에 틀림없다. 물가 불안, 유가 급등, 유럽 재정위기로 주요국 증시의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글로벌 증시의 단기 전망이 더욱 어렵게 됐다.

다만 중장기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일본 경제에 대한 불신이 국제 금융시장에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와 증시에 큰 근심거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가운데 1995년 고베(神戶) 대지진의 사례를 들며 세계 증시가 단기적인 충격을 극복하고 건설경기 활성화 등에 힘입어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세계 증시도 대지진 발생일인 11일 일본 등 아시아 증시와 유럽 증시가 강한 충격을 받은 반면 미국 증시는 상승세로 마감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 고베 대지진 때 큰 충격 없었지만…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일본 경제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닛케이종합주가는 당일 0.5% 하락에 이어 3개월간 20%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같은 기간 3.5% 하락에 그쳤고, 미국 증시는 오히려 8%가량 상승했다.

고베 대지진과 달리 이번 지진은 넓은 지역에 걸쳐 진행 중이며,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일본 정부가 피해 복구에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의 폭이 넓지 않다는 점에서 고베 대지진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지진이 일본 동북부의 산업지역을 강타해 피해 규모가 국지적인 수준을 넘어섰고, 심각한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일본 정부에 대해 국제 금융시장에서 불신이 생길 경우 부정적 영향이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국제 투자자금이 이번 지진으로 안전자산 선호를 강화할 경우 국내 증시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개별기업 영향은 제각각


일본 경제 피해는 고베 대지진 때보다 훨씬 크지만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금융과 산업의 영향력이 다른데 일본이 한국에서 투자금을 회수할 경우 주식 및 채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며 산업은 수출이 늘면서 긍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이번에 큰 피해를 본 일본의 정유, 석유화학, 반도체, 자동차 등 업종은 국내 증시에서 재부각되면서 증시 주도권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고베 대지진 때도 반도체 업종의 주가가 상승세를 탔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일본 부품 의존도가 높아 부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항만과 공항을 통한 운송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지진의 영향은 중립적일 수도 있다.

관건은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 동향이다. 고베 대지진 당시에는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투자금을 환수하고, 보험회사들이 보상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엔화를 매입하는 바람에 엔화가치가 3개월 동안 18.5%가량 상승한 바 있다. 바클레이스은행은 “단기적으로 이번 지진이 엔화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이라고 봤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출시장에서 한국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경쟁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수혜를 본다. 수출기업들의 주가 강세가 예상되는 이유다. 하지만 엔화 강세는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 고베 대지진 때도 엔화 가치는 3개월 이후 꺾여 연말에는 27%가량 떨어졌다. 주이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세계경제 비중이 1995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기 때문에 미국 중국시장이 견조하다면 국제금융시장의 동요는 별로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당분간 사태 추이를 지켜보자는 쪽이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당분간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추후 상황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고, 무디스는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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