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불확실성 시대, 기업의 리스크 접근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질주하는 기업에 리스크는 필수… 피하지 말고 부딪쳐라

리스크는 기업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보유 자산의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일정 수준의 리스크를 반드시 떠안아야 한다. 리스크를 무조건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딜로이트 리뷰 제공
리스크는 기업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보유 자산의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일정 수준의 리스크를 반드시 떠안아야 한다. 리스크를 무조건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딜로이트 리뷰 제공
세계적인 금융정보업체인 톰슨로이터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급 출판물 발간업체였다. 이 회사는 1990년대 인터넷의 확산으로 출판업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른 출판사보다 이런 변화를 훨씬 일찍 감지한 것. 이에 따라 인터넷 확산에 타격받을 만한 자산과 사업을 매각했다. 또 고품질 전문 정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정보 전달을 위한 소프트웨어·솔루션 업체를 인수했다. 이처럼 고급 정보를 즉시 제공할 수 있는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련 역량을 키우는 등 생존을 위한 도전을 이어갔다. 고급 정보 생산이라는 기본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업계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리스크를 충분히 떠안은 것이다. 그 덕분에 톰슨로이터는 2010년 4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리스크는 기업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다. 자산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일정 수준의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새로운 실험이나 혁신에서 어느 정도의 실패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리스크를 회피해야 할 위험이 아닌 성장의 기회로 보고 리스크를 전사적으로 관리하는 기법을 리스크 인텔리전스(risk intelligence) 경영이라고 한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기업리스크자문본부는 ‘딜로이트 리뷰’에 실린 리스크 인텔리전스 경영의 원칙을 번역해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7호에 소개했다.

○ 블랙 스완도 있다

17세기 호주에서 흑조(블랙 스완)가 처음 발견됐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모든 고니가 흰색인 줄 알았다. 흑조는 9·11테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언제든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행동경제학자 나심 탈레브는 극단적인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심리를 흑조에 비유해 설명했다.

리스크 관리에서는 가정이 매우 중요하다. 전통적인 가정이 백조라면, 기업에 치명적인 위험이나 절호의 기회를 안겨줄 수 있는 가정은 흑조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경영 환경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기존 가정을 잘 이해하고 반대 명제를 제시해야 한다. 경영진은 앞으로 일어날 주요 변화를 예측하고 이것이 기업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한 반대 명제를 택해서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흑조와 같은 기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악영향을 미치는 흑조에도 대비할 수 있다.

○ 늦추지 마라

9·11테러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정부기관들이 수집한 많은 정보 간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관련 징후와 경고를 무시해 엄청난 재앙이 현실화했다는 점이다. 항공의학저널의 한 연구에 따르면 비행 사고의 80% 이상은 조작 실수에 따른 것이었다. 또 이런 실수의 80%는 상황 인식, 주의, 경계 부족이 원인이었다.

비즈니스 현장도 비슷하다. 기업 내에 정보 공유의 장애물이 많다. 이는 갑작스럽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양의 정보와 부서 간 소통 부재, 중앙집중적 통제 체계의 부족 등에 따른 것이다. 기업은 흑조의 조짐을 감지하고 변화가 미칠 파장을 이해해야 한다. 리스크를 신속히 감지하고 조기경보시스템을 도입하면 업계 선도자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위기의 징후로 여겨지는 미미한 신호를 감지하려면, 찾고자 하는 대상인 흑조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신호 감지를 위한 메커니즘, 대응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실제로 로열더치셸은 1973년 석유위기에 대비해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그 덕분에 이 회사는 생산 설비 증설이 아닌 정제 효율 개선을 통해 선두기업이 될 수 있었다. 기업이 성공하면 현재에 안주하려 하고 변화에 저항한다. 하지만 여러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 염두에 둬라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반면 재앙은 갑작스레 닥친다. 나쁜 일은 좋은 일보다 훨씬 빨리 생긴다. 하지만 전통적인 리스크 평가 방식은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보고 리스크의 파급 속도나 증폭 문제는 그다지 크게 감안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에스더 콜윌 딜로이트앤드투시 파트너는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했을 때의 경험을 소개했다. 당시 등반대는 설원 속에 갈라진 깊은 틈에 추락하거나 산사태를 겪을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당연히 사전에 이런 리스크에 대한 많은 대비책을 세워뒀다. 반면 등반을 위한 체력 쌓기나 식량 준비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그 결과 등반대 12명 중 콜윌을 비롯한 4명만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등반대원은 사소한 것을 행하지 않아 실패했다. 그는 “실패의 원인은 다름 아닌 작은 의사 결정들의 조합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리스크 요인의 크기와 상관없이 위기 상황에서 민첩하게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역량을 향상시켜야 한다. ‘해당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가 아닌 ‘사태가 얼마나 빨리 진행되는가’ ‘리스크를 증폭하는 계기는 무엇인가’ 등을 평가해야 한다.

○ 유지하라

안전 마진(margin for safety)은 비상시에도 안전한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 한도를 의미한다. 초대형 기업이라도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아 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진은 적절한 안전 마진을 확보해 리스크 대응 역량을 키워야 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아폴로 프로그램의 달착륙선 제작 사례는 안전 마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당시 제작 과정에서 착륙선 무게가 늘었지만, 착륙선을 운반할 우주선은 최초의 설계 기준을 따랐다. NASA 로켓개발센터장인 워너 본 브라운은 오차 범위를 고려한 우주선 무게가 34t이라고 보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과거 경험을 통해 실제 무게는 항상 예상치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로켓 개발자에게 개발 기준을 39t 이상으로 잡으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아폴로11호가 제작됐을 때 우주선의 무게는 45t에 달했다. NASA가 안전 마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 덕분에 로켓은 예정 시간에 맞춰 무사히 이륙할 수 있었다.

○ 충분히 감수하라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유지하려면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리스크를 수용해야 한다. 모든 리스크를 제거할 수는 없다. 또 리스크와 관련한 모든 의사 결정이 정확히 이뤄질 수도 없다. 따라서 기업은 수용할 리스크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 리스크를 적절하게 보상받을 수 있을지 결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리스크를 현재의 역량에서 수용할 수 있을지도 판단해야 한다.

리스크 인텔리전스 경영에서는 리스크 선호도에 따라 수용 또는 회피 리스크의 유형을 나눠야 한다. 기업은 신제품 개발이나 신규 시장 진입처럼 보상받을 수 있는 리스크(기회)에 대한 선호도를 높여야 한다. 반면 규제의 미준수, 운영 실패와 같이 보상받을 수 없는 리스크, 즉 위험에 대해서는 선호도를 낮춰야 한다. 또 최고경영자(CEO)가 리스크에 대한 선호 수준을 결정하면, 이사회는 비즈니스 전략 및 이해 관계자의 기대 수준과의 연계성을 따져서 이를 승인하거나 수정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7호(2011년 3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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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약점 극복한 ‘로마軍 신화’의 비결은

▼ 전쟁과 경영


로마인은 유럽 여러 민족 중 체격이 작은 편에 속했다고 한다. 날래고 사나운 유목민족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덩치 큰 유럽 민족들이 그들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힘과 힘이 부닥치는 고대 육박전에서 평범한 체구의 로마인이 우세를 보인 비결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힘을 극대화하는 로마군만의 노하우에 있었다. 로마군의 혁신적 시스템, 공학기술, 체계적인 훈련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로마군은 오늘날 군인들이 쓰는 철모와 비슷하게 머리를 감싸고 측면에 귀마개 같은 쇠를 붙인 투구를 썼다. 머리와 얼굴까지 통째로 감싸고 눈과 입만 보이는 일체형 투구를 사용한 그리스군과는 달랐다. 살과 피가 튀는 아비규환의 전장에서 동료들과의 효율적인 대화와 팀워크는 강력한 경쟁력이다. 로마군은 팀워크와 통제가 생명인 밀집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한 그리스식 일체형 투구를 포기하고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리는 새로운 투구를 디자인했다. 그들이 쓰는 투창, 사각형 방패, 양날 검 ‘글라디우스’에도 로마군의 전략적 디자인이 녹아 있다. 구성원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해 집단의 힘을 극대화하고 신체적 약점을 극복한 로마군의 혁신을 생생한 사례와 분석을 통해 소개한다.



간디식 혁신, 동반성장의 야심을 현실로

▼ 스페셜리포트


‘기원후 500년경 인도의 한 수학자가 숫자 0의 개념을 만들었다. 그는 매우 놀라운 예지력을 가졌다. 인도에서 발생할 혁신의 숫자를 정확히 맞혔으니 말이다.’ 과거 인도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이 유행했다. 그만큼 인도는 혁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곗바늘이 마치 과거에 멈춘 것만 같았다. 하지만 최근 인도는 급부상하는 신흥시장이자 새로운 혁신의 원천이다. 영리한 인도 기업들은 신기술과 과감한 사업모델로 혁신에 나서 신흥시장의 가난한 이들도 살 수 있는 저렴한 제품을 설계하고 아주 적은 자본으로 대량 생산에 나선다. 분당 1센트짜리 통화료, 30달러짜리 백내장 수술, 2000달러짜리 자동차 등 믿기 힘든 가격의 제품과 서비스가 인도 시장에서 나왔다. 선진 기업들의 허를 찌르는 그들의 혁신은 공급망 관리, 인재 모집, 새로운 경영환경 구축 등 가치 사슬의 모든 요소를 바꿔놓고 있다. 신흥국가의 저소득층을 뜻하는 BOP(Bottom of the pyramid) 개념을 주창한 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대 로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간디식 혁신(Gandhian innov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가 지난해 작고하기 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남긴 유고를 전문 번역해 소개한다.



안정적 수익 내는 기업 주가가 더 높다고?

▼ 맥킨지쿼털리


시장에는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을 꺼린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그래서 기업 경영진은 종종 이익 유연화(earning smoothing)에 매달린다. 등락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수익보다 안정된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미 해당 업종에 변동성이 내재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맥킨지 조사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이 조사에서는 수익 변동성이 낮은, 즉 안정적 수익을 내는 기업의 주가가 더 높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변동성이 높은 기업들 중 상당수는 주주총수익률(TRS)이 높았다. 심지어 수익 변동성이 낮은 기업들의 상당수는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다가 일정 시점에 이르면 수익이 급감하는 패턴을 보였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수익 변동성을 줄이려는 시도도 별 효과가 없었다. 맥킨지의 컨설턴트들이 수익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 이익 유연화에 매달리기보다는 매출이나 자본수익률을 근본적으로 신장시키기 위한 의사 결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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