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계열사 ‘상선’ 경영권 분쟁 재현 조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 현대重등 반대로 우선주 확대안건 무산

현대건설 인수 과정에서 현대자동차그룹과 날카롭게 맞섰던 현대그룹이 이번에는 현대중공업그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겉으로는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경영권 문제가 걸린 문제다.

○ “투자자금 마련 vs 주주가치 훼손”

현대상선은 25일 주주총회에서 우선주 발행한도를 2000만 주에서 8000만 주로 늘리는 정관변경 안건을 상정했다. 하지만 현대상선 지분 23.8%를 갖고 있는 2대 주주인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KCC(4.0%), 현대백화점(1.9%), 현대산업개발(1.3%) 등이 결집해 반대표를 던지면서 찬성 64.95%, 반대 및 기권 35.05%로 부결됐다. 정관변경은 주총에 참석한 주주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현대건설은 현대상선 지분 7.8%를 갖고 있지만 이날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아 중립을 지켰다.

현대상선이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꾀하는 표면적 이유는 대규모 선박 발주를 위한 자금 확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앞다퉈 투자를 확대하는 글로벌 해운회사들과 경쟁하려면 자금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대를 주도한 현대중공업 측은 “우선주 발행한도를 확대하면 주주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현대상선의 2대 주주로서, 심각한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돼 내린 결정”이라고 맞받았다.

○ 속내는 “경영권 안정 vs 인정 못해…”

그러나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둘러싸고 현대상선과 현대중공업이 대립하는 이면에는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수 싸움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번 주총에서 우선주 발행 확대 안건이 통과됐더라면 현대그룹은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해 현 회장 우호지분을 늘리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게 원칙이지만 상환전환우선주는 일정 기간 후 의결권 있는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

이처럼 현 회장이 경영권 안정에 노심초사하는 까닭은 2003년 KCC, 2006년 현대중공업과 심각한 경영권 분쟁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순환출자구조의 중심인 현대상선의 주식 ‘50%+1’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언제든 경영권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 등 현대그룹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은 우호지분을 포함해 45% 정도다. 이 관계자는 또 “당초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 안건에 대해) 찬성 위임장을 보냈던 현대산업개발이 주총 바로 전날 위임장을 회수한 뒤 반대표를 던진 것은 현대중공업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재계는 이날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 무산에도 당장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위태로워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세력을 결집해 반대표를 던진 것은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경영에 결코 힘을 실어주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 재계 인사는 “지금 현대그룹으로서는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 7.8%가 너무도 아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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